[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이대 나온 여자’의 변신이다. 영화 ‘타짜’(2006)의 관능적인 팜파탈 ‘정마담’ 캐릭터로 오랜 시간 각인되어온 배우 김혜수가 데뷔 이후 가장 ‘상스러운’ 역할에 도전했다. 26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를 통해서다.
김혜수는 1970년대 생계를 위해 밀수에 뛰어든 해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드넓은 서해 앞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전복을 건지는 식모 출신 해녀 춘자 역을 연기한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짙은 메이크업 대신 민낯으로, 화려한 의상 대신 해녀복을 입은 채 자유롭게 물속을 영위하는 모습이 천생 해녀같다.
그러나 실상 김혜수는 전작 ‘도둑들’ 촬영 당시 물 속에서 연기하다 공황을 겪은 아픔이 있다. 진숙 역의 염정아를 비롯, 박준면 김재화, 박경혜 등 동료 해녀 배우들이 3개월동안 별도 훈련을 받았을 때 그는 넷플릭스 ‘소년심판’ 촬영으로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물 밖으로 올라오다 촬영장비에 머리가 부딪혀 이마를 다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원래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수영도 좋아했죠. 그런데 ‘도둑들’ 촬영 이후 물에 대한 공황증세가 생겼어요. ‘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죠. 그 이후 물에 안 들어갔는데 ‘밀수’는 역할이 해녀다 보니 물 속 준비과정이 필수였어요. 무려 한 달 이상 수중 세트에서 촬영했죠.”
물에 생긴 상처는 물로 치유할 수밖에 없었다. 공포를 극복하게 해준 건 동료들의 연대였다.김혜수는 “동료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물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공황이 극복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동료들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물이 편해졌죠. 나중에는 정아 씨가 ‘이 언니, 지금 물밑에서 말도 해요’라고 얘기할 정도였어요.(웃음)”
실제로 ‘밀수’에서도 진숙과 춘자가 협업할 때 바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 바다 밑에 있던 사람이 그 손을 잡고 포지션을 바꾸는 장면이 있다. 김혜수는 그 장면을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위험이 도사리는 바다에서 안전을 위해 팀을 이뤄 활동하는 해녀들의 생활과 팀워크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는 의미다.
류승완 감독, 염정아와는 첫 호흡이다. 김혜수는 “나도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며 “대부분의 작품을 다 관람했다”고 말했다.
팬심을 넘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가 70년대 일부 해녀들이 밀수에 동참했다는 당시 기사 한줄로 기획됐다는 점이다. 김혜수는 “단 한줄의 소스에서 출발해 시나리오화되는 과정이 신기했다”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소년심판’, 감독님은 영화 ‘모가디슈’ 촬영으로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서면으로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대본에 활용하는 모습도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세계최초 해녀 액션극’을 함께 한 염정아에 대해서는 “염정아란 이름이 가지는 신뢰감이 있다”라며 “서로 기질은 다르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대 배우로 함께 하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1986년 열여섯살에 데뷔, 37년 차 배우인 김혜수는 대표작 ‘타짜’의 정마담을 비롯, ‘도둑들’의 팹시처럼 육감적인 여성 캐릭터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배우, 특히 여배우들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영화계 맏언니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밀수’ 촬영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워크가 중요한 해녀들처럼 김혜수 역시 배우들의 팀워크를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어느 순간 제 이름 앞에 ‘맏언니’란 꼬리표가 붙었지만 ‘맏언니’ 역할이 뭔지, 선후배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 많고 선배라고 제가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요. 제가 가장 중요시 하는 건 현장에 충실하기, 팀원 김혜수의 역할이 누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죠. 저 역시 ‘밀수’에서 함께 한 배우들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는걸요. 우리 모두 ‘원팀’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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