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임영웅 ‘모래알갱이’ 中)

배우 정해인(35)은 임영웅의 ‘모래알갱이’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 마음을 팬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최근 열린 데뷔 10주년 팬미팅에서 이 곡을 불렀다.

“가사를 듣고서 ‘멍’ 해졌어요. 겉으론 당당하고 센척하는데, 보잘것없고 작아졌던 순간들이 많았죠. 저도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에 큰 위로를 줬던 노래입니다. 이 곡을 팬분들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훈훈한 외모에 탁월한 연기력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30대 남자 배우 정해인도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마음이 스스로 엉망진창이었다”라고 진솔하게 털어놓은 그의 고민은 예상밖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이하 디피)는 정해인의 자존감이 가장 바닥이었던 2020년 처음 만난 작품이다. 그 해 출연했던 tvN 드라마 ‘반의 반’이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 종영한 데다 개인적인 일도 겹치면서 그는 많은 좌절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정해인에게 ‘디피’ 시리즈는 의미가 남다르다. 2020년 ‘디피’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과 처음 만났고, 배우로서 변곡점을 맞았다.

“보여주지 못했던 연기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도와준 작품이라 감사함이 커요. 자존감이 바닥이었을 때 이 작품을 만나서 큰 사랑을 받았고, 시즌2까지 할 수 있었죠. 제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준 작품이에요.”

군인을 잡는 군인, ‘군무이탈체포조’라는 신선한 소재와 현실의 부조리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 ‘디피’는 2021년 공개 직후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인기에 힘입어 2년 만에 시즌2로 돌아온 ‘디피’는 준호(정해인 분)와 호열(구교환 분)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시즌1의 흥행은 주연배우인 정해인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그는 “그 부담이 연기에 방해가 된다는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즌2 촬영 전 한 감독과 “처음하는 것처럼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시즌1 흥행에 대한 부담은 현장에 있는 모두가 갖고 있었다. 그러면 몸에 더 힘이 들어가 보는 사람들이 부대낄 수 있고, 현장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다. 힘을 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려 했다”고 회상했다.

2010년 전역한 정해인에게 군대는 힘든 기억이다. 군 복무 당시 어린 나이에 계급사회를 경험했다는 그는 “이등병 때 제 손에 행주나 걸레를 항상 쥐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등병 때는 많이 긴장하고 혼났고, 일병 때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상병, 병장이 되면서 부대 내에서 손을 넣거나 짝다리 집는게 가능해졌다. 군대가 철저하게 계급사회구나 느꼈다”고 떠올렸다.

‘디피’라는 생소한 소재로 여전히 한국에선 조심스러운 군대 이야기를 ‘미필’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였다는 건 이 시리즈의 큰 성과다. 그 이유에 대해 정해인은 ‘호기심’과 ‘보편성’을 꼽았다.

“군대는 폐쇄적인 곳인데, 그런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니 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거 같아요. 시즌1 때는 공감을, 시즌2 때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군대만 아니라 회사나 어느 집단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시즌2에서는 고위 간부들이 은폐한 진실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면서 전작보다 한층 무겁고 메시지 역시 광범위해졌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판타지’라는 지적과 함께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해인은 “어떻게 보셨든 시청자들의 감정과 느낌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재미, 감동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안고 가야 하는 숙제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청 자체가 관심과 애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해인과 안준호는 닮은 부분이 많다. 극중 그가 연기한 안준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다. 고집과 강단도 있다. 선임 조석봉(조현철 분)이 부대 안에서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고도 외면했다고 자책하고, 디피로서 탈영병 신우석(박정우 분)의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가졌다. 그래서 시즌2에서 안준호는 더 필사적이다. 이를 두고 앞서 한 감독은 ‘융통성 없는 얼굴’이 정해인과 안준호가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준호에 대해 정해인은 “가족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성장 과정부터 책임감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 죄책감도 있었다.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 나라도 해야겠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준호만큼 융통성이 없진 않다”고 웃었다. 이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이 험난한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보단 소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안준호가 가진 신념과 소신은 정해인의 모습에서도 투영된다. 그는 “고집일 수도 있고, 자기가 스스로 가진 가치관이 확고한 점은 닮은 거 같다”며 “촬영할 때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은 ‘왜 안되지?’ ‘왜 이러지?’ 질문을 하곤 했다. 모르는 것들을 아는 척하며 넘어가거나 잘못 알고 있는걸 용인하며 넘어가는걸 못한다”고 짚었다.

통상 출연 배우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편안한 차림과 노메이크업으로 진행하고는 하는데 정해인은 매 인터뷰마다 수트를 입고 반듯한 모습으로 임하곤 한다. 정해인은 “제 스스로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분위기와 자리에 맞는 톤앤매너를 갖추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역시 캐주얼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귀하고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트를 입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디피’ 시즌3가 제작된다면 출연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정해인은 “하게 된다면 당연히 달려가서 해야죠”라고 망설임없이 답했다. 그가 얼마나 ‘디피’에 대한 애정이 큰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디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배우로 재평가를 받은 정해인이지만, 그의 로맨스를 기다리는 시청자 역시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디피’ 이전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등을 히트시키며 멜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일부 팬들은 ‘군복 벗고 멜로를 해달라’는 투정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같은 팬들의 요청에 정해인은 “저도 군복을 벗고 전역 좀 하고 싶다”고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멜로물을 안한지 4년이 됐어요. 일부러 피한 건 아니고 저도 하고 싶어요. 회사와도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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