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10년차 밴드 실리카겔은 올해 인디신이 거둔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로 꼽힌다.
김건재(드럼), 김한주(키보드,보컬), 김춘추(기타, 보컬), 최웅희(베이스)로 구성된 4인조 밴드인 이들은 ‘뷰티풀민트라이프’,‘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 ‘전주얼티밋뮤직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렛츠락페스티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등 2023년 국내에서 열리는 유수의 페스티벌 무대를 휩쓸었다.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해 국내 페스티벌에서 가장 돋보이는 밴드”라는 평가가 나왔고 실제 공연장에서 가장 큰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2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개최된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신설된 MMA ‘베스트 뮤직 스타일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상업적 성적이나 인기보다 음악적 성취를 높이 사는 부문이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우리에게 이 상을 줄까?’라는 의문이 컸어요. 현장에 모인 K팝 아이돌 팬들도 다소 낯설어 하는 듯 했지만 분위기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죠. 흔히 K팝이라는 장르가 아이돌 음악 위주로 분류되곤 하는데 이제 신이 확장되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낌을 받았어요.”(김춘추)
이들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싱글 ‘노 페인’(NO PAIN)의 인기가 한몫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중략)/노 페인(No Pain), 노 페일(No Fail) 음악 없는 세상”
곱상한 외모와 달리 굵직한 저음의 김한주가 “노 페인”을 반복해서 외치는 이 곡은 팬데믹으로 곳곳에 흩어진 MZ세대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일종의 주술이 됐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에서 비대면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한자리에 모일 수 없던 젊은이들은 실리카겔이 외치는 ‘고통없는 세상’을 외치며 한자리에서 노래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춘추는 “그간 실리카겔의 음악이 대중에게 다소 난해하고 불친절했다면 ‘노페인’은 새로운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그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기 급급했어요. 어떻게든 존재하기 위해 음악을 계속 만들긴 했는데 대중에게 우리를 보여드리고 들려드릴 방법이 없었죠. ‘노 페인’을 만들 때는 팬들이 좋아하실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우울한 곡이라 생각해 이처럼 퍼져나갈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팬들 반응에 놀랐어요. 팬데믹 이후 발표한 이곡에 반응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활동의 원동력이 됐죠.”(최웅희)
서울예대 동문인 네 멤버는 지난 2013년 8인조 밴드로 출발했다. 지금의 네 멤버에 미디어 아트를 담당했던 VJ 이대희, 김민영, 강동화, 베이스의 구경모 등이 함께 했다.
처음 학교과제를 위해 뭉쳤던 이들의 모임은 겁 없이 확장됐다. 2015년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 가지 시각’이라는 데뷔 싱글을 발표하고, 이듬해 10월 정규 1집 ‘실리카겔’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실리카겔은 그 해 EBS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수상했고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을 받는 등 실력파 밴드로 각광받았다. 실험적인 음악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VJ가 함께 했던 팀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영상을 맡았던 친구들과 저희의 생활패턴이 달라졌어요. VJ친구들의 경우 본업이 있었는데 음악 작업 때문에 생업에 부담을 줄 수는 없었죠. 결국 서로의 앞날을 위해 결별하게 됐죠.”(김춘추)
하지만 음악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이들의 작업은 현재진행 중이다. 20일 발매하는 정규 2집 ‘파워 앙드레99’는 지난 3월 발표한 싱글 ‘머큐리얼’부터 시작, 8월 발표한 ‘틱탁톡’ 등 지난 1년간 멤버들의 음악적 산물을 총집합한 결과물로 2장의 CD에 담긴 수록곡만 총 18곡이다.
앨범명인 ‘파워 앙드레99’는 이들이 스토리텔링한 ‘머신보이’의 일종의 본체다. 더블 타이틀곡인 ‘류데자케이루’의 뮤직비디오는 멤버 최웅희가 직접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았다.
“이번 앨범은 철저히 계획 하에 만들기 시작했어요. 3월 싱글부터 시작해 비주얼적인 세계관을 만들고자 했죠. 앨범 커버 아트에 ‘머신보이’의 신체 일부를 보여주고 얼굴이 보이게끔 하기도 했어요.음악제작부터 비주얼적 접근을 염두에 뒀죠.”(김한주)
실리카겔은 지금의 여세를 몰아 2024년 스페인 음악축제 프리마베라 출연도 확정됐다. 10년 전 서울예대 앞 김춘추의 자취방에 모여 신디사이저와 기타를 쳤던 20대 청년들은 이제 꿈을 이룬걸까.
김한주는 “그때 기생충처럼 형들 방에 모여 살며 ‘우리도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하고 싶다’면서 놀았던 추억이 생생하다”며 웃었다.
“관객 한두명 있던 클럽에서 커플 관객 2명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기억이 나네요. 하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려고 합니다.”(김건재, 김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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