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 기자] 버추얼(가상) 아이돌 플레이브(PLAVE)가 K팝에 파란을 일으켰다. 버추얼 아이돌에 진짜 아이돌이 밀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플레이브는 하민, 노아, 예준, 밤비, 은호로 구성된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이다. 2D 형식의 아이돌인 이들은 카메라와 특수 장비 등을 활용해 사람인 본체를 캐릭터로 변환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상 아이돌과 차별화된다. MBC 사내벤처에서 독립 분사한 버추얼 IP 스타트업 블래스트가 제작했다.

지난해 3월 발매한 첫 미니앨범은 초동 20만장을 넘겼다. 여세를 몰아 지난 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 33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뉴웨이브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26일 발매된 두 번째 미니앨범 ‘아스테룸 : 134-1’은 음원 발매와 동시에 수록곡 전곡이 멜론·벅스 등 각종 국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앨범 초동 판매량은 56만 장을 넘어섰다.

지난 9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 르세라핌, 비비 등 인기 가수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유명 기획사 보이그룹들도 지상파 음악방송 1위는 쉽지 않은 성과다.

다음달 13~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첫 번째 팬 콘서트 ‘헬로, 아스테룸’은 6만명이 몰려 일찌감치 매진됐다. 지난 17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데뷔 1주년 기념 팝업 스토어 ‘웨이 포 러브’에는 매일 5000명 이상의 팬들이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 음악→소통→현실성으로 팬들 사로잡다

가상의 인물이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킨 건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한 이래 26년만이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 실제 가수와 컴퓨터그래픽을 결합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월등히 발전했다. 버추얼 아이돌은 소수의 마니아 문화가 아닌 K팝의 한줄기로 자리잡았다.

플레이브가 여타 버추얼 아이돌 중 가장 돋보인 이유는①가수로서 필수불가결한 음악의 힘이 우선했다. 이들은 작사, 작곡, 안무에 직접 참여하는 ‘자체 제작돌’이다. 초반 유명 작곡가들에게 좋은 곡을 받지 못해 멤버들이 스스로 만든 곡의 사와 가사가 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②팬들과 꾸준한 소통도 큰 역할을 했다. 평균 주 2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꾸준히 팬들과 만나고 있고, 멤버별 커버곡도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버블에선 1대1로 팬들과 대화도 한다. 라디오나 버스킹, 댄스 챌린지 등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팬들의 ‘입덕 포인트’를 만들었다.

③버추얼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본캐’가 존재한다는 점이 돋보였다. 플레이브는실존인물인 ‘본캐’가 존재한다. AI가 아닌 ‘본캐’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은 가상 인물들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이는 팬들의 과몰입을 유발한다.

본캐의 존재와 별개로 공식적으로는 가상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보이그룹에게는 피할 수 없는 군입대 리스크부터 열애 등 아이돌 그룹에게 민감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언어나 국적의 물리적 제약도 없다.

30대 플레이브 팬이라는 진 모 씨는 “처음엔 노래가 2000년대 느낌이 들어서 향수를 느끼며 듣다가 무대도 찾아보고 영상 팬사인회도 보게 됐다”며 “AI나 3D가 아니라 오히려 거부감이 없고, 최근 많아진 아이돌 스캔들이나 군 복무로 인한 불안감이 없다는 점도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키는 요인인 거 같다”고 말했다.

◇플레이브 성공에 가요계도 관심, 장기 흥행으로 이어지려면

최근 가요계는 음악과 기술의 융합을 꾸준히 시도 중이다. 하이브는 아티스트의 보이스에 새로운 기술을 융합해 언어와 성별의 한계를 뛰어넘는 미드낫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3D 가상 걸그룹 메이브를 선보였고,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의 세계관에 등장했던 가상 캐릭터 나이비스를 데뷔시킬 계획이다.

플레이브가 보여준 성과는 가요계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과 음악이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현실 아이돌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팬덤 확장력까지 갖췄다.

이는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

다만, 플레이브의 인기가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도 있다. 시장이 커져야 플레이어도 동반 성장할 수 있듯 플레이브 뿐만 아니라 유사한 버추얼 아이돌이 더 많이 나오고, 가상 세계와 음악 산업을 기반으로 한 시장의 확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플레이브 소속사 블래스트가 K팝 기획사에서 출발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요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아쉬운 지점이다.

아울러 플레이브의 리얼리티를 만든 본캐의 존재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본캐의 존재가 알려지고 주목받을수록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고 몰입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열성적인 코어 팬덤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음악의 한 부류로 보기에 공감대가 부족하다. 대중성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