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정부의 압박으로 억눌려졌던 외식·식품·유통가 가격 인상이 전반적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동시에 수요 지속 원재료인 커피·설탕 등도 기후 재해와 병충해 확산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고물가 추세가 맞물리는 중이다.
4·10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치킨 프랜차이즈는 메뉴 가격을 인상하고, 이커머스 일부 유통업체는 구독상품 월 회비를 대폭 올렸다.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던 식품·외식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시작된 모양새다. 총선 후 줄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 굽네, 외식업계 가격 인상 총대 메나
15일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는 이날 배달 수수료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을 이유로 치킨 9개 제품 가격을 일제히 1900원씩 인상했다.
이에 따라 대표 메뉴인 고추바사삭은 기존 1만8000원에서 1만9900원으로 올랐고, 오리지널은 1만6000원에서 1만7900원으로 인상됐다. 남해마늘바사삭은 1만9000원에서 2만900원으로 올랐다. 오븐바사삭, 치즈바사삭, 갈비천왕, 불금치킨, 볼케이노, 양념히어로 등도 가격이 1900원씩 비싸졌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상위 5위에 드는 굽네가 인상을 결정하면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주요 외식기업들이 잇따라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지난해 교촌치킨 인상을 시작으로 잇단 줄인상이 이어지며 현재 배달비 포함해 치킨 3만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교촌치킨은 교촌오리지날, 허니콤보 등 주요 제품 가격을 3000원 인상했다. 현재 교촌오리지날은 1만9000원, 레드오리지널은 2만원이며 허니콤보와 레드콤보는 2만3000원이다. 이어 지난해 말 bhc는 대표 메뉴인 뿌링클 가격을 1만8000원에서 2만1000원으로 인상하는 등 주요 제품 가격을 3000원 올렸다.
글로벌 치킨 프랜차이즈 파파이스도 15일 치킨, 샌드위치(버거), 디저트류, 음료 등의 가격을 평균 4%(100∼800원) 올렸다. 배달 제품 가격은 더 비싸진다. 파파이스는 배달 메뉴에는 매장 판매가보다 평균 약 5% 높은 가격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이들을 기조로 다른 외식기업이나 식품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 이상 기후에 원료 가격도 상승…식탁 물가 비상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기후플레이션’(클라이밋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현실화하고 있다.
카카오 열매 가루로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가격도 1년 만에 3배로 급등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선물시장에서 코코아는 최근 1개월간 49% 뛰어 톤당 1만달러를 뚫고 1만50달러까지 올랐다.
초콜릿 브랜드는 코코아 가격이 올라가면서, 제품 가격을 인상하거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디바는 지난주 초콜릿 평균 가격을 10% 이내로 올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내 제과업계도 이러한 인상 기조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 등은 초콜릿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현재 기후인플레션, 전쟁 장기화로 가격 측면에서 원료 확보가 어렵다. 급등하기 전 확보해뒀던 재고는 이미 다 소진해가고 있다”며 “우선 여러 방면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가격 인상 부분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으로 흑해와 홍해에서 각각 물류비용이 증가한 부분도 식료품 가격을 끌어올린 배경이 되고 있다.
올리브유는 세계 최대 생산국 스페인 가뭄과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같은 주요 올리브 생산국 기후 탓에 작황이 나빠지면서 가격이 급등 중이다.
이에 따라 ‘100% 올리브유’를 쓴다는 점을 내세웠던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올리브유 가격 급등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올리브유보다 가격이 저렴한 해바라기유를 섞어 사용하고 있다.
설탕 역시 기후변화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2위와 3위 수출국인 인도와 태국에서 엘니뇨 영향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설탕 생산이 급감했다. 인도의 생산량 전망치 상향 조정과 태국의 수확 속도 개선 덕분에 설탕 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예년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 제과업계에 따르면 코코아, 설탕 등 원료가 급등하면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 믿었던 쿠팡 너마저…와우 멤버십 4990원→7890원
국내 이커머스 독주 중인 쿠팡이 ‘와우멤버십’ 월 회비를 대폭 인상하면서 이를 기조로 물가 상승 전반적으로 확산할 가능성 농후해졌다.
쿠팡은 지난 12일 와우멤버십 기존 가격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약 58% 인상했다. 멤버십 회비 인상은 2021년 12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72.1% 올린 이래 2년 4개월 만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쿠팡의 갑작스러운 인상에 우려를 제기한다. 현재 동종 이커머스 업계는 구독비를 인하하거나 무료 이용권을 주는 방식으로 쿠팡 이탈 고객 잡기에 나섰지만, 이들도 인상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그동안 눌러졌던 물가 상승 움직임이 외식업계 촉발로 식품업계 전반에 번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값·에너지·물류비 상승에 배달 수수료까지 안 오른 게 없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특히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식품·외식기업은 국제 유가·원재료 상승에 타격을 받고 있어, 올해 안에 제품 가격 인상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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