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배아현의 가수 인생은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3’ 출연 전후로 갈린다.

그는 지난 3월 종영한 이 프로그램에서 2위인 선(善)에 뽑히며 8년 무명생활에서 벗어났다. 그간 회사도 없이 어머니와 직접 CD를 돌렸던 그에게 소속사(냠냠엔터테인먼트)가 생겼다. 덕분에 얼굴도 활짝 폈다.

“활동이 즐거워요. 울산, 대전, 부산, 서울 등 ‘미스트롯3’ 전국투어 콘서트를 통해 새로운 팬들을 만나고 있어요.”

트로트라는 장르 특성상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팬들의 연령층이 높아진다. 울산 콘서트 때는 90대 어르신이 60대 따님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뒤 “배아현이가 최고!”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꽃을 사려다 못 샀다”며 내민 봉투에는 오만원 한 장과 만원 지폐 다섯 장이 담겨있었다.

봉투엔 구불구불한 글씨로 ‘배아현 파이팅’이라고 적혔다. 배아현은 어르신의 정성을 마다하지 않았다. 봉투는 집에 고이 모셔뒀다. 그는 “이 돈은 절대 못 쓴다. 부적 같은 돈”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배아현은 유독 어르신 팬이 많은 편이다. 그는 끝음 처리가 간드러진 정통 트로트를 구사한다. 이른바 ‘꺾기 인간문화재’로 불린다. 이미자, 주현미 등 트로트 1세대 계보를 이을 거란 평가도 나온다.

배아현은 고교 2학년 때 JTBC ‘히든싱어’(2013) 주현미 편에서 ‘눈물의 블루스’를 불러 주목받았다. “오색등 네온 불이~”라고 입을 떼자 모두가 놀랐다. 주현미와 똑같은 음색이었다.

성인이 된 뒤 SBS ‘트롯신이 떴다2’(2020)에서 주현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네 노래가 가슴에 와닿지 않아”라는 따끔한 질책을 들었다. 멘토로 여겼던 주현미의 한마디는 충격이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동안 노래를 잘못하고 있었던 거죠. 어린 나이에 감정을 넣으면 발성이 무너진다는 보컬 강사의 조언에 감정을 빼고 노래를 했거든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크게 깨달았어요.”

음정과 박자만 신경 쓰던 노래에 ‘감정’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가사를 곱씹으며 노래를 재해석했다. 마침내 ‘미스트롯3’(2024)에 이르러 꽃망울이 터졌다. ‘조약돌 사랑’, ‘모란동백’, ‘장녹수’ 등 아낌없이 쏟아낸 한(恨)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결승전에선 이산가족의 아픔을 노래한 나훈아의 ‘평양아줌마’(1985)를 인생곡으로 골랐다.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김연우는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미자 선생님 뒤를 이을, 트로트 역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가수”라고 칭찬했다. 장윤정은 “정통 트로트를 공부하는 후배들이 배아현을 존경하는 선배로 꼽을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미스트롯3’에서 선이 되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단 한 번도 트로트를 빼고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묵묵히 달려온 덕분이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해서 돈을 버는데 저만 수입이 없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스케줄도 없어서 지역 방송사에 어머니랑 같이 CD 돌리는 게 일이었어요. 지역 축제 행사하러 갔다가 출연료도 못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고요. ‘트롯신이 떴다’에서 톱5까지 올랐는데, 팬데믹 때문에 또 주저앉았어요. 가장 힘든 시기였죠.”

지역 곳곳의 팬들이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무명 시절부터 배아현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이제 배아현은 더 큰 꿈을 꾼다. 정통 트로트를 계승하면서도 대중적인 세미 트로트까지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배아현은 “다양한 노래를 부르면서 대중과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며 “발라드 트로트를 부르면 톤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중간지점을 찾으려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변신은 하반기 발표를 목표로 하는 싱글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의 롤모델은 멘토인 주현미다. 배아현은 “주현미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대중에게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명절 때도 인사드리고, 문자로 전화로 계속 연락드린다. 제겐 은인”이라며 웃어보였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