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두바이=김용일 기자]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2025시즌을 앞두고 울산HD와 연장 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한 ‘블루드래곤’ 이청용(36)은 이렇게 말하며 선수 황혼기 마지막 불꽃 투혼을 다짐했다.
지난 2020년 11년간의 유럽 리그 생활을 마치고 울산을 통해 K리그에 복귀한 이청용은 ‘축구 도사’ 애칭에 걸맞은 경기력으로 사랑받았다. 홍명보 현 A대표팀 감독이 지휘한 2022년엔 울산 ‘캡틴’으로 뛰며팀이 17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앞장섰다. 그해 최우수 선수상(MVP)까지 품었다. 이후 팀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지속한 그는 지난해 홍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난 뒤 소방수로 부임한 김판곤 감독 체제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뽐내며 팀이 3연패하는 데 이바지했다.
울산이 올겨울 베테랑 선수를 대거 정리하며 리모델링에 나섰지만 ‘신임 주장’ 김영권과 더불어 이청용을 붙잡은 이유다.
울산의 동계전지훈련지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만난 그는 연장 계약과 관련해 “내가 잘해서 이뤄진 것보다 그간 함께한 동료 덕분이다. 고마웠다.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팬, 아직 팀에 필요한 선수로 생각해 준 구단에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인 이청용은 먼저 유니폼을 벗은 선배,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자기의 마지막 순간도 그린다. 프로 데뷔 팀인 FC서울 시절 한솥밥을 먹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대표팀에서 호흡한 울산 박주영 코치가 지난해 은퇴했다. 또 기성용(FC서울)과 더불어 ‘단짝’인 구자철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청용은 이에 대해 “박주영 코치께서는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은퇴 경기 1골 1도움 활약)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여러 생각이 들더라. 자철이도 무언가 다른 장면으로 은퇴했는데 이제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후회 없이, 부상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청용이 울산에 온 뒤 가장 선수 변화가 큰 시즌이다. 그는 “전지훈련 기간 서로 서먹서먹한 것을 없애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선수끼리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후배 김영권이 새 주장으로 선임된 데엔 “영권이가 이전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다. 2주간 지켜본 영권이는 정말 큰 노력을 하고 있다. 팀원으로 고맙다. 많은 후배들이 잘 따르더라”며 “그간 우리는 (주장 외에) 많은 베테랑이 도왔다. 나 역시 영권이를 중심으로 팀이 더 힘을 받게 돕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입생’에게도 베테랑답게 조언했다. 이청용은 “가진 기량을 인정받 선수가 우리 팀에 왔다. 지난해까지 우리가 리그 3연패를 했는데, 중요한 건 새로 온 선수가 4연패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자칫 그런 부담이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확신’도 품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즌이 될 것 같다. 그래도 감독께서 계획이 있으실 것이다. 최근 평가전 상대가 K리그 수준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했다. 젊은 선수도 감독 주문을 잘 이해하고 운동장에서 구현하고자 했다”며 “시즌에 좋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그라운드에 설 것 같냐’는 말엔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나이보다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그래서 한 시즌 한 시즌 내게 특별하다.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 역시 이청용이 마음 편하게 선수 황혼기를 보내게 돕는단다. 그는 “아내는 워낙 티를 안 내는 스타일이다. 다만 옆에서 바라보면 내가 운동장에서 뛰었을 때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하고 싶다. 그래도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이 대표 유럽파로 뛴 아버지의 과거를 어느정도 아느냐’는 얘기를 꺼내자 “잘 모른다”고 웃더니 “요즘엔 아빠가 축구선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더라. 합숙, 전지훈련을 자주 하면서 한동안 못 볼 때가 많으니까 ‘일반 회사원’이었으면 좋겠다더라”고 전했다.
울산과 선수 끝자락까지 약속하며 진정한 블루드래곤으로 거듭난 이청용은 마지막 불꽃을 다짐한다. 그는 “(은퇴 전에) 한가지 욕심을 내면 팀 성적이다. 굉장히 내게 중요할 것 같다. 똑같이 열심히 하고도 우승 트로피를 든 시즌과 그렇지 않은 시즌은 마지막에 느끼는 바가 다르다”며 “모든 구성원이 웃으면서 행복하게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