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영화를 시작할 무렵 배우 하정우의 얼굴은 색이 진했다. ‘추격자’(2008) 속 사이코패스 지영민을 시작으로 ‘비스티보이즈’(2008) 호스트바 실장 재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조직폭력배 보스 최형배가 대표적이다. 누아르로 영화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2월 5일 개봉하는 영화 ‘브로큰’에선 하정우 초창기 시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색이 진한 인물이다. 스타덤에 오른 후 블록버스터에 참여한 하정우는 주로 화자 역할을 맡았다. 화자는 보통의 현실적인 인물이 많다. 작품의 중심을 잡는 게 주요 임무였다. 아무래도 하정우의 짙은 색도 옅어졌다. 그런 하정우가 변주를 둔 것. 벌써 “하정우의 새 얼굴”라고 반가워하는 반응이 많다.
하정우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브로큰’과 같은 영화로 제가 연기를 시작했다. 블록버스터는 이야기가 선행되고 인물이 나오는데 이번 작품은 캐릭터가 툭 튀어나온다. 연기할 맛이 나는 작품이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브로큰’은 조직폭력배 출신 민태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민태는 동생의 죽음과 어느 소설가의 ‘야행’이란 작품이 연결됐다고 판단한 뒤 이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간다. 많은 분량에도 대사가 짧다. 외형엔 남성성이 강화됐다. 수염도 더부룩하게 길렀다. 이제껏 봐왔던 하정우와 분명 다른 결이다.
“90Kg까지 찌웠어요. 자연인의 상태였죠. 수염도 덥수룩하게 길렀어요. 의상도 꽤 촌스러웠고요. 주어진 대로 연기를 했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얼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호의적인 반응을 보면서 ‘많은 분이 기다렸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저의 세팅된 얼굴보단 후줄근한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연출을 맡은 김진황 감독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건설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본 장면과 형과 있었던 사연 등을 바탕으로 버무렸다. 우연과 필연이 세련되게 얽혀 들어가는 중에도 날 것의 액션이 섞이면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브로큰’의 강점이자, 하정우를 설득한 지점이다.
“경상도 특유의 거친 느낌이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죠. 나아갈 지점이 뚜렷하면서도 유연해요. 감독님이 말투는 거친데 참 섬세하거든요. 피조물은 창조주를 닮는다고 하죠. 영화랑 감독님이랑 겹치는 지점이 있어요.”
하정우가 거의 모든 장면에 출연한다. 하정우의 에너지에 많은 것을 기댄 작품이다. 힘이 실린 듯 가벼운 듯 나른한 이미지로 있다가 단숨에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잠깐 일로 와” “잘 안 들려”와 같은 짤막한 대사로 인물이 가진 깊이를 표현한다. 하정우의 멋이 잘 담긴 작품이다.
“김남길 빼곤 거의 다 처음 일해보는 사람들이었어요. 배우도 스태프도 다요. 익숙지 않은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도리어 새로운 기운을 받았어요. 예측을 다 벗어나요. 한 장면씩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고요. 제 연기가 좋은 평가를 받는 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예요. 덕분에 맛있게 연기했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