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여행은 인간에게 극한의 자유를 준다고 한다. 그 해방감으로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일상에 전념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니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한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행의 긍정적인 관념을 손바닥 뒤집듯 뒤바꾼 프로그램이 있다. SBS Plus, ENA ‘지지고 볶는 여행’이다.
‘나는 SOLO’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나솔사계) 제작진이 스핀오프로 만든 연애 여행 예능이다. 서로 호감은 확인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두 커플이 프라하 여행을 떠난 것을 관찰한다. 불과 3회 방송됐을 뿐인데 이른바 ‘장안의 화제’다.
비록 시청률은 0.4%대이지만, 티빙 내 많이 본 순위 10위 안에 안착했다. 커뮤니티에선 ‘지지고 볶는 여행’ 글이 가득하다. 오프라인에서도 대화 주제가 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 두 사람이 떠난 여행인데, 오래된 커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포인트가 많다. 현실감을 기반으로 긴장감, 스릴 가득한 갈등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행 예능을 표방하지만, 스릴러에 가깝다.
‘나는 솔로’ 22기 영수와 영숙이 한 커플, ‘나솔사계’에서 커플이 된 남자 4호와 9기 옥순이 한 커플이다. 두 커플 모두 서로 다른 문제로 다투고 싸웠다가, 화해하고 웃는 장면이 반복된다. 사실상 웃는 장면은 거의 없다. 아슬아슬 싸울 것만 같은 장면이 연속된다.
22기 영수·영숙은 갑을 관계가 분명하다. 영숙을 더 좋아하는 영수가 모든 걸 맞춘다.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영수와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는 게 속편한 영숙의 묘한 신경전이 포인트다.
영숙이 지시를 내리면 이동과 음식, 각종 제반 사항을 고려해 계획을 짜는 영수의 모습이 담겨 있다. 3회까지 참고 참으며 관계를 유지하는 영수의 인내가 막바지에 이른 듯 하다. 누군가의 잘못은 없지만, 결이 맞지 않아 갈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현실 커플을 떠올리게 한다.
4호와 옥순은 더 피가 말린다. 현실에서 커플로 이어지려다 실패했다고 한 두 사람은 다시 프라하의 여행길에서 만났다. 다만 옥순의 태도가 이상하다. 4호의 모든 의견을 부정적으로 내친다. 4호가 어떻게든 맞춰주려고 하는 가운데, 옥순은 4호의 뜻대로 하지 않으려 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 때문에 옥순이 사과를 받고 싶은데, 그 부분에 해소를 해주지 않은 4호에 앙심을 품고 짜증과 부정으로 응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고 있다. 지속해서 갈등이 쌓였다 풀었다를 반복한 두 사람은 결국 트래킹을 가느냐 마느냐로 다퉜다. 4호의 인내심이 폭발하면서 3회가 끝났다.
일각에서는 ‘지지고 볶는 스핀오프’라며 비판하기도 하지만, 익숙한 인물로 새로운 포맷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틀기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등장만 하면 관심을 받은 출연자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제작진의 영리한 선택이다.
다음 순서는 ‘나솔사계’에서도 바람을 일으킨 10기 정숙과 그의 파트너였던 10기 영수다. 무더운 여름 에어콘이 약한 곱창집에서 “선풍기 안 갖고 왔어?”란 대사와 함께 명장면을 남긴 두 얼굴이다. 피로도가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조롱하면서 작품을 보는 ‘길티플레저’가 꼭 올바른 건 아니지만, 결국 ‘지지고 볶는 여행’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