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 어떤 곡보다 더 큰 위로를 준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변진섭이 부르고 송필근이 리메이크한 ‘숙녀에게’다.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가사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민 호구송’이라 불린 ‘숙녀에게’가 개그맨 송필근의 입을 통해 재탄생했다. 최악의 경우 장이 녹는다는 괴사성 췌장염을 이겨낸 송필근이 불러서일까, 감동의 크기를 감당하기 힘들다.

‘숙녀에게’는 지난해 12월 1일 방송한 KBS2 ‘개그콘서트’ 코너 ‘아는노래’에 등장했다.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청각 장애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재해석했다. “어쩐지 그대 내게 말을 안해요”란 가사에 주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무 말 없이도 감정을 깊게 담아내는 나현영과 부드러운 송필근의 목소리와 수화가 겹쳐지고, 터질 듯 말듯 밀려오는 감정을 틀어막은 덕분에 보는 사람들이 대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는 노래’와 ‘숙녀에게’가 연일 화제가 됐고, 송필근은 유튜브 채널 ‘송필근의 공식’에 커버곡과 MV도 올렸다. 커버곡 영상은 114만회를, MV는 64만회를 넘겼다.

뜨거운 반응이 식을 줄 몰랐다. 그러자 송필근은 지난 16일 음원도 내놨다. 약 일주일 사이 음원 플랫폼 멜론의 핫100에서 28위까지 올랐다. 지난 18일엔 카카오톡 인기 프로필 뮤직에선 3위까지, 지니 차트 발매 1주 부문에선 각종 아이돌을 제치고 1위를 점령했다.

담담하게 노래를 풀어나가는 기술도 훌륭하지만, 곡에 담긴 감정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집중력도 돋보인다. 죽음의 목전까지 다가갔다가 다행히 돌아온 송필근이어서인지, 감정을 꾹꾹 눌러도 온전히 전달되는 힘이 있다.

KBS 공채 개그맨 27기를 수석으로 입성한 송필근은 ‘개그콘서트’ 길흉화복을 함께 걸었다. ‘놈놈놈’으로 관심을 받고 ‘필근아’라는 유행어 덕에 이름도 알려졌다. 공개 코미디가 저물어드는 과정도 함께 했다.

이후 2023년 괴사성 췌장염에 걸려 투병 생활을 길게 했다. 4개월 만에 무려 35kg이 빠졌다. 아내는 의사로부터 “(송필근이)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죽다 살아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고 했다. 다행히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도 웃음을 놓지 않는 ‘뼈그맨’(뼈 속까지 개그맨 줄임말)이다. “췌장이 일부 토꼈다”고 스스럼없이 말도 했고, “기사가 크게 나려면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파야 했다”면서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심지어 팬덤명은 ‘췌장이’다.

수없이 많은 개그맨들이 가요계의 문을 두들겼다. 커다란 인기를 발판으로 즐기는 음악을 내세웠다. ‘개가수’란 신조어도 탄생했다. 송필근은 이제껏 ‘개가수’들과 결이 다르다. 가수 못지 않은 음악성, 고운 음색, 감동적인 스토리를 앞세운다. ‘숙녀에게’ 외에도 ‘그대에게’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사랑의 바보’ 등 ‘아는 노래’에 나온 음악 모두가 감정을 일렁이게 만든다. 덕분에 울고 웃으며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