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르세라핌(LE SSERAFIM)의 선택이 옳았다. 그 중심은 사랑이다.
르세라핌의 미니 5집 ‘핫(HOT)’이 활동 종료 이후에도 뜨겁다. 타이틀곡 ‘핫’은 음악방송 1위 트로피를 추가했고, 수록곡 ‘컴 오버(Come Over)’는 온라인에서 “서서히 중독된다”는 반응과 함께 떠오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핫’ 앨범은 르세라핌의 커리어에서 뚜렷한 전환점이 됐다. 데뷔 이래 직선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흐름에서 벗어났다. 대신 ‘핫’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했다. 곡선적인 퍼포먼스와 정제된 사운드로 정서를 재정립했다.

변화의 폭은 컸다. 펑크 기반 얼터너티브 장르였던 데뷔곡 ‘피어리스(FEARLESS)’를 시작으로 EDM 하우스 바탕의 ‘크레이지(CRAZY)’까지, 이들은 줄곧 직관적인 리듬과 메시지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핫’은 지금까지의 구조를 뒤집었다. 록과 디스코가 어우러진 서정적인 팝 사운드, 사랑에 집중한 가사, 감정선에 무게를 둔 안무 구성 등 르세라핌에게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확장이었다. 종착지는 ‘사랑’이었다. 다만 르세라핌은 이 사랑을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갈등과 대립까지 끌어안는 포괄적인 감정으로 해석했다.

시기적으로도 유의미했다. 르세라핌은 지난해 라이브 실력을 두고 대중의 냉철한 평가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강하게 반박하거나 맞서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는 ‘핫’의 메시지로 응답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 재가 된대도 난 좋아”라는 가사처럼, 르세라핌은 ‘핫’을 통해 내면을 직시하고 그 감정을 무대 위 서사로 끌어올렸다.
‘핫’과 함께 주목받는 ‘컴 오버’도 같은 맥락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르세라핌 스스로 “가장 힘든 안무”라고 밝힐 정도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안무가 핵심이지만, “지금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함께 춤추자”는 긍정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와닿았다. 멤버들이 ‘컴 오버’ 춤을 추며 환희하는 얼굴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변화의 동기는 팬덤 ‘피어나(FEARNOT)’다. 사쿠라는 앨범을 준비하며 “고민도 하고 눈물도 났다”며 팬들의 사랑으로 다시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홍은채는 ‘핫’으로 받은 트로피가 “첫 1위만큼 특별하고 값진 상”이라고 말했다. 허윤진은 ‘피어나’를 “꺼져 가던 불을 다시 일으키고, 죽을 것 같은 사람을 다시 깨어나게 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르세라핌의 정체성 ‘아임 피어리스(IM FEARLESS)’를 완성하는 주체가 팬들이라고 했다.
직선의 에너지에서 곡선의 감정으로, 르세라핌은 ‘핫’을 통해 너그럽고 따뜻한 확장을 이뤄냈다. 이들이 꺼내든 ‘사랑’이라는 주제는 결국 르세라핌 자신에게도 현실의 벽을 넘어설 용기의 불씨가 됐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