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저를 처음 알아보신 분입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사인을 했다. 받은 사람은 어리둥절하다. 무명 아이돌 그룹 출신 의사라는 희한한 설정이다. 성향은 그야말로 MBTI 대문자 ‘E’다. 사람들에게 엉겨붙고, 관심받는 것에 총력을 다한다. 지나치게 의존성이 강해 “개념이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환자를 알뜰히 챙기는 건 제일 뛰어나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동료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데 다 맞는 말이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하 ‘언슬전’) 속 강유석이 맡은 엄재일의 얼굴이 그렇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하는 강아지를 비유한 ‘멍뭉미’가 잘 어울리는 역할이다. 자기 맡은 일을 충실히 다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게 엿보인다.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성향이 지나친 터라 질리는 포인트가 분명한데, 강유석이 연기하면서 묘한 매력으로 변모했다.

동료들과 깊게 어울리는 것에 비중을 두지 않은 동기들에게 함께 ‘점프샷’을 찍자고 제안하던가, 시답지 않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조직력을 키우려는 것도 엄재일만의 매력이다. 귀찮기도 하지만, 막상 엄재일의 제안을 따르고 나면 어딘가 모를 뿌듯함이 생긴다. 덕분에 ‘응애즈’라 불리는 산부인과 전공의 동기들은 점점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 4화까지 나온 ‘언슬전’에서 ‘응애즈’ 청일점 엄재일의 매력을 높이는 건 강유석이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아이유 분)의 동생 은명이로 이목을 끌었다. 누나에게 쏠린 관심을 되돌리려고 철없이 응석만 부리다가, 금명이가 결혼하면서 정신을 차리는 인물이었다. 초반부 분량이 적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설장한 둘째 아들의 면모를 훌륭히 완성했다.

앞서 SBS ‘법쩐’에선 부조리한 선배 검사와 맞서 싸운 신입 검사를 맡은 바 있다. 연기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지만, 워낙 어려운 전문용어도 많았고 무거운 역할을 소화해야 했으며 대부분 선배 배우와 붙었던 터라 긴장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폭싹 속았수다’나 ‘언슬전’에선 비교적 자기 옷에 맞는 역할을 맡자 재능이 활짝 피어나는 모양새다. 특히 ‘언슬전’에선 통통 튀는 젠지 세대 의사를 특유의 유쾌함으로 풀어내고 있다. 비교적 깐깐하고 제멋대로인 면이 짙은 여성 동기들과 달리 누구와 잘 지내려고 하는 ‘멍뭉미’가 묘한 미소를 띠게 한다.

한국예술종합대학 연극원 연기과 출신인 강유석은 최근 가장 돋보이는 신인 배우에 속한다. OCN ‘신의 퀴즈: 리부트’에 데뷔한 뒤 경험을 쌓다 왓챠 ‘새빛남고 학생회’를 통해 연예계에서 주목받았다. 이후 ‘법쩐’과 넷플릭스 ‘택배기사’를 거쳐 ‘폭싹 속았수다’로 확실히 인지도를 쌓았다. ‘언슬전’에서 비로소 재능과 매력을 만개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치기 어린 면이 그득한 엄재일은 어떤 성장을 보일까. 우려보단 기대가 크다. 강유석이라면 잔상이 깊은 순간을 만들 것이니까.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