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이전에 보인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있죠. ‘했던 작품 또 하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제가 더 노력해서 충족해야 하겠죠. 더 잘해야겠다고 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훈은 다작 배우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는다. 인상 깊은 캐릭터를 남긴 ‘시그널’ ‘모범택시’ ‘협상의 기술’까지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했다. 내용은 달랐지만, 성격이 유사했다. 기시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비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또 잘하겠노라 다짐했다.

이제훈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많은 기회를 받은 만큼 아쉬웠다는 평가도 감내해야 한다”며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제 연기를 보고 ‘이런 모습도 있었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소주전쟁’은 그래서 달라야만 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국보 소주의 해체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제훈은 글로벌 투자회사 솔퀸의 직원 인범 역을 맡았다. 기업사냥꾼을 연기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자료를 탐독하면서 캐릭터를 구체화했다.

“IMF 이후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기업 지배구조가 변화됐어요. 기업의 투명성이나 효율성,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금융시스템의 법망을 피해 자신들이 유리하게 기업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모습도 있었죠.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주를 매개체로 보여줬는데, 이런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했으면 해요.”

영어 대사의 허들도 넘어야 했다. 단순히 흉내 내는 것으로 되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 임원들과 능숙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이제훈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이, 헬로우’ 수준이 아니라 금융 용어를 편하게 구사해야 했다”며 “전문가들이 봤을 때 확 빨려들어갈 수 있는 순간의 프로페셜널한 모습이 필요했다.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의 코칭을 끊임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소주전쟁’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거짓말로 기업을 앗아간 이들이 승리한다. 이전 작품의 결말이 권선징악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이제훈은 “우리가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려면 응징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했으면 좋겠다”면서 “제가 했던 대부분의 작품이 인과응보의 결말이었다. 아직도 이런 금융사법 체계를 피해 가는 일들이 많기에 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다. 원래 제목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인 것처럼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인범의 전사가 편집 과정에서 생략된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꼽았다.

이제훈은 “인범의 아버지가 회사에 헌신하고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 장면이 있다. 종록(유해진 분)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깊게 투영하고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 시나리오 속 좋은 포인트였는데 없어져 아쉽다”면서도 “이런 소재의 좋은 작품이 대한민국에 나올 수가 있어서 다양성 측면에서 기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