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저는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 어떻게 스며들어 있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게 큰 과제죠.”

유해진이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조선시대 광대(‘왕의 남자’)부터 왕(‘올빼미’)까지, 범죄자(‘공공의 적’)에서 검사(‘야당’)로, 기업 오너 아들의 비리를 덮는 상무(‘베테랑’)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재무이사(‘소주전쟁’)도 이질감이 없다. 이만큼 오랜 시간, 많은 배역을 소화하면서 연기력 논란이 없는 건 배역에 착 붙는 옷을 지어왔단 얘기다.

유해진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스크린에 나타난 제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인정하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신에 슬쩍 스며드는 방법밖에 없다”며 “영화 초반에 관객과 저의 일종의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지금부터 뭐로 간다. 그러면 해보시오’하면서 관객과의 시간이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올빼미’(2022)를 예로 들었다. 대본에는 거친 대사를 뱉으며 불쑥 등장해야 했다. 이럴 때 자신의 얼굴을 본 관객이 웃음이 터져 몰입감이 떨어질지 우려했다. 왕 앞에 발을 치고 카메라가 근접해서 들어오는 게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내 수정했다.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동시에 메인 빌런의 아우라를 구축했다.

‘소주전쟁’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헌신적으로 일하는 종록(유해진 분)을 보며 그 시절 아버지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았다. 유해진은 “회사에 다녀보지 않았는데 ‘나는 회사원이니까 이렇게 해야지’ 하고 준비하는 건 안 된다. 어떤 심정으로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관객들이 ‘유해진이구나’라고 느끼기보다 ‘저 얘기가 더 중요하네’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주전쟁’은 복잡한 경제 용어를 쉽게 푸는 게 중요했다. 기업의 해체·인수 과정을 깊게 설명하다보면 관객이 영화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웬만하면 다 풀어주자고 얘기했어요. 제 대사는 분명히 그렇게 했고, 원래 대본에는 전문용어가 너무 많았어요. 최대한 풀어줘도 볼까 말까 한다고 얘길 많이 했죠. 시각적으로 그래프가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작품이 쉬워야 한다는 것, 딱딱하면 외면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죠.”

‘소주전쟁’은 삶과 일에 대한 성찰을 던져준다. 돈을 좇던 인범(이제훈 분)은 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종록을 보면서 삶의 가치관을 바꾼다. 회사와 동료들의 안위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행복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자신이 몸담은 외국계 헤지펀드가 저지른 일에 환멸을 느끼고 종록을 돕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해진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며 “주변에 경제적으로는 참 어려운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거에 행복해한다. ‘소주전쟁’도 ‘그렇지 저거지. 사는 게 저거지’하고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