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타율 0.172, 이정후 슬럼프 부른 건 타순 변화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방망이가 차갑게 식고 있다. 시즌 타율은 0.255까지 떨어졌고, 6월 성적은 타율 0.172에 불과하다.

가장 뚜렷한 원인은 잦은 타순 변화다. 이정후는 1번, 3번, 4번, 5번, 6번, 7번 타순 등을 오갔다. 짧은 기간내에 스무번 이상 타순이 바뀐 듯하다 하다.

데뷔 첫 풀시즌을 치르고 있는 이정후에겐 적응 자체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신인의 옷을 입고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타순까지 요동치면, 중심을 잡을 여지가 없다.

팀 내부에서는 이정후의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하며 출루형 1번도, 장타도 가능한 3~4번도 모두 맡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이정후의 출중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가 1번과 7~8번을 오가면 그 자리에서 잘할까?

기대에 못미칠 것이다. 현대야구에서 타순의 중요성이 약화했다고 하지만, 각 타순마다의 역할이 있고 부담이 존재한다. 특히 이정후와 같은 신인급 선수에겐 더 큰 중압감으로 작용한다.

1번 자리에서 20-20을 작성한 후 풀타임 2년차부터 2번, 4번, 5번 그리고 하위타순까지 두루 경험한 저니맨 최익성(야구사관학교 대표)은 “감독과 구단은 이정후의 타순을 바꾸는게 배려라는데,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정후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너무 힘들거다”라고 언급했다.

최 대표는 “1번은 출루, 4번은 장타 등 타순마다 역할과 스윙이 다르다. 이정후의 능력은 알지만, 최근 타율 저하는 타순의 변동 때문이다”라고 부진의 배경을 분석했다. 이정후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기에 해결사 롤을 맡기지만, 잦은 타순변경은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

타순이 흔들리면 타격 리듬이 무너지고 정체성에도 균열이 생긴다. 또한 타순 변경의 마지막 스트레스는 결국 선수에게 온전히 간다. 잘하든 못하든 마지막 압박은 감독과 구단이 아닌 이정후에게 간다는 의미다. 감독은 전술을 짰을 뿐이고, 이정후는 그 결과를 모두 짊어져야 한다.

최 대표는 “정후가 독보적이라 활용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프로세계에서 배려는 없다. 행여 배려라고 했는데, 이정후가 그 자리에서 못하면 뭐가 되겠나”라고 반문하며 “배려는 한 타순에서 끝까지 밀어주는거다. 지금 상황은 활용하는거다. 그런데 독이 든 성배다. 결국 이겨내겠지만, 이런 경우 흔하지 않다. 천재 이정후만이 겪는 아픔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후가 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답은 이미 나와있다. “이정후가 워낙 잘하니 어디에 놓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성적이 좋을때만 유효하다. 팀과 선수를 위한 해답은 변동이 아닌 고정이다. 이정후라면 금세 안정감을 가지고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이정후의 부진은 선수의 슬럼프가 아니다. 잦은 타순변동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낸 강압적 슬럼프라고 보는게 마땅하다. 진짜 배려는 하나의 타순을 맡기고 그 자리에서 믿어주는 것이다. 잦은 변동으로 점철된 지금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게 하는 셈이다.

현재 이정후의 부진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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