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 속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시즌3는 웃음기를 쫙 뺐기 때문에 재미가 다소 반감이 된다. 농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6회를 몰아서 보면 그 의미가 확 와닿지 않는 부분도 더러 있을 수 있다. 공개 직후 ‘불호’(不好)가 많은 것도 이런 것에서 기인한다. 메시지에 너무 매몰됐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사회적 은유-인간의 양심’이라는 두 가지 층위에서 짚어보면 그 재미가 증폭될 수 있다. ‘오징어게임’은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옮겨놓은 작품이다. 456명의 참가자 가운데 1명의 우승자를 가린다. 이는 인류 탄생 이래 국가, 사회, 조직 모든 층위에서 반복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를 황동혁 감독의 세계관으로 녹여냈다. 숱한 서바이벌 작품과 차별화됐던 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승자독식 세계를 보완하는 두 개의 안전판이 어떻게 인간을 기만하는지 보여줬다는 점이다.


시즌3 파이널 스테이지 ‘고공 오징어게임’이 대표적이다. 참가자들은 탈락자들을 밀어내기 위해 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의 횡포를 밀어붙인다. ‘공정’ ‘민주’를 입에 올린다. 순간의 위협을 모면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술수다. 이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피라미드식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면 우리는 함께 했던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가야만 한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했던 순간과 다르지 않다.
황 감독은 마지막 순간 이정재와 이병헌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줬다. 456번 기훈(이정재 분)은 프론트맨 인호(이병헌 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인호도 앞서 132번 참가자로 나와 숱한 사람을 제거하고 ‘오징어게임’의 호스트가 됐다. 프론트맨이 된 인호는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증명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돈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동시에 타인에게 폭압적일 수 있다는 걸 온갖 게임을 통해 보여줬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반면 기훈은 달랐다. 이건 시즌1 새벽(정호연 분)을 만난 덕분이었다. 기훈이 상우(박해수 분)를 죽이려고 할 때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라고 양심을 깨친다. 이는 시즌3에서 새벽의 환영으로 고스란히 재현됐다. 인간이 양심을 어길 때 누가 옆에서 각성을 해줬느냐가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준다. 자기밖에 모르던 333번 명기(임시완 분)가 222번 준희(조유리 분)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사수하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발현된 것 역시 이런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은 마지막 시즌에서 장르적 재미를 소거하는 선택을 꾀했다. ‘사람’에게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서사의 인과성이 부족하거나 캐릭터의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징어게임’은 제 발로 기어와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종국에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 사회를 응축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반영하고, 장르적 재미와 메타포, 긴 여운을 남긴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