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올여름, 에스파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청량 콘셉트는 에스파의 선택지에 없었다. 특유의 ‘쇠맛’ 가득한 사운드와 파격적인 비주얼까지. 에스파가 여름에 맞춰 내놓은 새 싱글 ‘더티 워크(Dirty Work)’는 그 자체로 발상의 전환이다.

‘더티 워크’는 그루브한 신스 베이스 위에 힙합 바이브를 얹은 댄스곡이다. 여타 걸그룹들이 여름에 꺼내 드는 시원한 콘셉트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사운드는 무겁고 둔탁하다. 하지만 에스파 멤버들의 여유 있는 보컬이 더해지며 매혹적인 리듬감이 완성됐다. 보컬 뒤에 깔린 속삭이는 음성은 귀를 사로잡는다.

뮤직비디오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촬영됐다. 드넓은 야적장, 거대한 중장비, 225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는 동료를 위해 어떤 ‘더러운 일(dirty work)’도 마다하지 않는 거침없는 레지스탕스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영상 속 에스파는 진흙탕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두터운 퍼 아이템을 착용한 채 강렬한 안무를 선보인다. 일반적인 여름 콘셉트와는 다른 시도다. 제철소라는 독특한 배경과 다크한 퍼포먼스, 비주얼이 어우러져 에스파 특유의 ‘쇠맛’ 콘셉트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사도 확고하다. “아임 낫 언 잇걸, 모어 라이크 어 힛걸(I’m not an it girl, more like a hit girl, 나는 잇걸이 아니라 힛걸에 가까워)” 같은 구절은 에스파가 내세우는 주체성과 강인함을 상징한다. 실험적인 콘셉트와 음악으로 정체성을 쌓아온 에스파의 노선이 이번에도 유효하게 작용했다.

특히 여름 시즌에 ‘더티 워크’를 꺼내 들었다는 점은 곡의 메시지와도 맞물린다. 이 곡은 제목처럼 ‘남들이 기피하는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에스파는 대부분의 아이돌이 피하려는 여름의 과열된 콘셉트를 정면으로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미감을 완성해냈다.

에스파의 뜨거운 선택은 도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싱글은 선주문량만 101만 장을 넘기며 여섯 번째 밀리언셀러 달성을 예고했다. 차트도 달궜다. 발매 직후 주요 음원차트 상위권에 직행했고, 중국 최대 음악 사이트 QQ뮤직에서는 디지털 앨범 판매, 트렌드피크, 음악지수, 전체 뮤직비디오 등 4개 차트에서 1위를 휩쓸었다. 판매액 100만 위안 초과 시 부여되는 ‘플래티넘’ 인증도 획득했다.

열기를 식힐 생각도 없다. 레이레이, 아킨스, 투스페이드 등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리믹스 EP에서는 사이버 펑크 사운드나 오토바이 엔진음을 활용하는 등 원곡의 강렬함을 한층 배가했다.

에스파는 8월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 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고 기세를 이어간다. 시야 제한석까지 3회차 전석 매진된 이 공연은 에스파의 뜨거운 질주가 최고조에 달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