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첫 등장에 공기가 달라졌다. 팬티만 입고 엉덩이를 박박 긁으며 나타났다. “넌 뭐냐”는 식의 시니컬한 태도와 중저음의 보이스가 장르를 바꿨다. 배우 서현우가 연기한 영진호가 등장하기 전까진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는 코믹 드라마에 가까웠다. 영진호가 나오면서 스릴러의 짙은 향이 풍겼다.

첫 등장부터 특별해야한다는 서현우의 전략이 정확히 통했다. 어딘가 의뭉스러우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얼굴에서 서스펜스가 생겼다. 층간소음에 고통받는 아파트 주민들의 사연이 나오는 사이 영진호만 등장하면 긴장감이 확 올랐다. 배우의 힘이 얼마나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지 체감되는 대목이다.

서현우는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첫 등장신에 공을 많이 들였다. 머리스타일부터 서 있는 형태, 목소리 톤도 여러 고심 끝에 나왔다. 문신의 형태도 위장단체에서 활용하는 문신이라고 했다. 타투마니아들은 안다. 첫 등장부터 분위기가 싹 바뀌어야 작품에 힘이 실릴 거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84제곱미터’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은 노우성(강하늘 분)이 층간소음에 시달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빚에 허덕이는 가운데 코인까지 손 댔다가 인생의 추락을 온 몸으로 경험하다 영진호를 만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영진호는 아파트의 비리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PD다. 모든 걸 힘으로 제압할 것 같은 강력한 이미지인데다 스마트한 면모도 갖고 있다. 아울러 무시무시한 광기도 선보인다. 다만, 이 인물이 가진 설정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층간소음 아파트를 취재하는지, 취재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행위엔 설명이 미흡하다.

“영진호가 도덕성이 결여돼 있긴 하죠. 사실 영진호는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어떤 신념이 가득한 완벽주의자로 해석했어요. 집안 곳곳에 자료가 빽빽하잖아요.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이 스스로 잡아놓은 틀이 깨지면 분노할 거라 생각했어요. 아파트의 비밀이 담긴 장부를 찾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전쟁같은 삶을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숙제였는데 그래도 잘 해결한 것 같아요.”

영화를 다 본 뒤 영진호를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투성이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거슬림이 없다. 연기로 인물이 가진 빈틈을 메워버린다. ‘저 사람이라면 저럴 것 같다’는 핍진성이 작동한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한 건 쉼없는 ‘관찰’이 근원이다.

“유튜브가 생기면서 관찰이 용이해졌어요. 어디서든 관찰을 하거든요. 전 연기할 때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고 해요. 관객이 저를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집중해요. 그러려면 많은 관찰을 통해 인물이 할 법할 행동을 취하는 게 중요해요. 진짜 연기에 숨은 고수들이 많아요. 저도 아직도 부족하고요. 겸허하게 고군분투하겠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