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인터넷 신문 기사를 접한 후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기사 내용은 단순한 성 비위 사건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 있었다.

공정성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통역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치부를 드러낸다.

문제가 된 곳은 법무부 산하 전남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이곳에서는 난민심사를 전담하는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난민을 대상으로 면접과 심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통역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통역사 고용 시스템의 불투명성과 개인적 재량이 작용할 수 있는 구조는, 공무원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결국 한 공무원은 프리랜서 통역사였던 결혼이주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법무부는 이를 ‘개인적 일탈’로 규정하며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사건은 공무원이 통역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행사했고, 통역사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는 명백히 위력에 의한 성 착취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해당 공무원에게 1개월 정직, 통역사에게는 해촉이라는 불공정한 징계를 내렸다.

공무원인 남성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통역사인 여성에게는 가혹한 판정을 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적절한 대응인가?

필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지난 수십 년간 결혼이주와 노동이주 문제를 연구해 왔다. 이주여성은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언어, 출신국, 외모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받는 존재이다.

그들에게 통역 일은 단지 생계수단을 넘어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여성의 노동이 권력에 의해 유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과 연예계에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 성상납과 성폭력 문제는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암암리에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개인 간의 사적 문제’로 축소하는 태도는, 한국 사회가 성 인식과 권력 구조에 대해 얼마나 안일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 통역 여성은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좋은 일’을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보호받지 못했고, 오히려 성적 대상화되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은 단순한 불쾌함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이 만든 구조적 폭력이다. 우리는 이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이대로 괜찮은가? 반복되는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지 말고, 제도적 허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공직사회는 권력과 윤리가 만나는 최전선이다. 윤리를 배제한 권력은 언제든 폭력이 된다. 그 폭력의 그림자는 이주여성, 난민,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드리워진다.

한국은 이제 K-컬처를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속’이다. 공직사회의 도덕성과 성숙도는 곧 그 나라의 품격이다.

반복되는 성비위, 관행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실효성 있는 처벌과 구조적 개혁만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 함한희 전북대 명예교수, 문화인류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