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준비된 연기자였던 것일까. 제대로 된 빌런을 만들었다.
레드벨벳 예리로 더 잘 알려진 김예림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첫 연기나 다름없는 시리즈 ‘청국고등학교’의 속 백제나를 훌륭히 구현했다. 재벌집 딸에 안하무인한 성격, 제멋대로에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려는 모난 태도, 자신의 심기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행동 모두 자연스러웠다.
나쁘기만 하면 쉬웠을텐데 김혜인(이은샘 분)과 연대와 대립이 공존하고, 조금씩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하는 서사도 있다. 경험이 많지 않은 김예림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놀랍게도 김예림은 매순간 정확한 감정과 안정적인 발음, 적절한 액션으로 수많은 숙제를 풀어냈다.

김예림은 지난 5일 서울 논현동 블리츠웨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백제나는 정말 성격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고민이 정말 많았다. ‘모 아니면 도’란 생각이 들어서 더 과감하게 연기했다. 이질감이 있긴 했는데, 방영 후에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누군가에게 남긴 상처는 부메랑처럼 나에게 남긴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백제나는 결핍이 심하다.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는 인물이다. 결국 또다른 폭력 앞에 굴복하는 일도 적잖이 벌어진다. 감정이 격한 순간도 많고, 대사는 대부분이 못됐다.
“저랑 성격이 워낙 달라서 대본에만 집중했어요. 저는 포장마차를 즐기는 소탈한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거든요. 너무나 극적인 캐릭터라 잘하면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못하면 욕을 많이 먹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우선 톤과 말투부터 바꾸려 했어요. 그래서 푼수 같은 말투를 먼저 고치려 했어요.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쓰며 제나를 그려나갔어요.”
나약함을 외적인 매력으로 감추는 인물이 백제나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김예림의 전략이 있었다. 김혜인과 공존과 대립을 이어나가는 부분 역시 대본으로 이겨냈다.
“제나는 외적으로 꾸미는 게 필요했어요. 내면이 극으로 안 좋아지는 걸 외면으로 더 화려하게 보여서 숨기고 싶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의상을 조금 많이 수정했어요. 색감도 제가 많이 고려했어요. 혜인이랑은 관계가 오락가락 하잖아요. 대본에 집중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왔어요. 어릴 땐 하루에도 열 두번씩 왔다갔다 하니까요.”

저예산에 신인으로만 구성된 ‘청담국제고등학교’가 성공할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OTT를 중심으로 기대 이상의 큰 인기를 모았다. 자연스럽게 시즌2 제작까지 이어졌다. 시즌3 제작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지만, 충분히 나올 법한 이야기다.
“시즌1때도 시즌2를 염두에 두진 않았었어요. 시즌1이 잘 되면서 거의 축제였어요. 다 정말 좋아했어요. 저도 한 번 더 작품에 나오게 돼서 기뻤어요. 시즌3를 염두에 둔 엔딩이라서, 나름 기대는 하고 있는데, 들은 얘기는 하나도 없어요.”
기대 이상의 연기력이었다. 아이돌 중에서 정말 잘하는 연기자도 나오는 반면, 연기력이 부족한 인물도 많다. 김예림은 준비된 연기자에 가깝다. 호흡이나 감정의 농도 등이 매우 정확하다. 감이 좋다고 볼 수밖에 없다.

“레드벨벳 준비하면서 연기 연습도 받았어요. 연기가 정말 재밌었어요. 연기를 하고 싶단 생각이 강했는데, 무대 활동 하면서는 도저히 병행이 안 되겠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계약이 종료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됐어요. 서로 뭘 하고 싶은지 대화를 많이 나눠서, 서로 응원하는 사이에요. 연기는 정말 재밌어요. 계속 도전하려고요. 다음엔 청춘 로맨스 하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