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라도 구속 여건이 충족되면 범죄가 되고, 반대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도 구속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잣대와 법적 잣대가 늘 동일할 수 없습니다. 법조인에겐 그게 늘 숙제죠.”

JTBC 토일드라마 ‘에스콰이어 :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하 ‘에스콰이어’) 1회 오프닝 시퀀스의 마지막 대사다. 법무법인 율림 면접에 나선 강효민(정채연 분)의 말이다. 마이크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올 법한 사례를 두고 법적 처벌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힌 뒤 이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법의 허점에 정곡을 찌른다.

시대마다 변해가는 보편적 정서나 도덕적 잣대에 법은 늘 뒤처져 있다. 그렇다고 윤리에 법을 맞추게 되면 그 빈틈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도덕과 법은 서로 견제하고 떠받들며 공존해 왔다. ‘에스콰이어’는 도덕과 법 사이에서 벌어질만한 딜레마에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사건·사고에 중점을 둔 여타 법정 드라마와 차별화 된 지점이다.

회차마다 복잡한 질문을 알기 쉽게 던졌다. “불임을 겪은 남성의 정자가 훼손된 것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나 “부모의 과도한 사랑은 죄가 되는가?” 혹은 “아동학대범을 향한 폭력적 응징은 정당한가” 등이다. 현실에서 속시원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사례를 던지고 그 안에서 심판자 역할을 하는 법조인의 고민과 혜안이 담겨 있다. 어려울 수 있는 문제지만, 현직 변호사인 박미현 작가의 대본이 워낙 탄탄해 보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풍부한 사례뿐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내 정치도 무겁지 않게 담아냈다. 소송에서 질 줄 모르는 능력자 ‘딱새’ 윤석훈(이진욱 분)은 부모를 잘 만나 대기업 사건을 쉽게 수임하는 고태섭(박정표 분)과 갈등을 겪었다. 본업을 아무리 충실히 잘해도 회사에 큰 돈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상황을 가볍게 터치했다. 늘어질 수 있는 사내 속사정을 영리하게 풀어냈다.

강효민과 윤석훈의 관계도 흥미롭다. 신입 변호사 강효민의 시선은 시청자의 인식을 대변한다. 변호사의 정의를 강조하지만, 이상에 매몰될 때가 많다. 반대로 윤석훈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확히 키를 쥐고 완전한 해답을 내놓는다. 윤석훈의 답이 강효민을 설득하면서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는데, 이는 시청자를 설득하는 효과도 갖는다.

윤석훈이 매우 멋진 인물이긴 하나, 정의의 사도처럼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답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대신 설득력은 강하다. 분명한 메시지를 쉬운 구조로 전달하는 면에서 보기 드문 웰메이드다. 덕분에 시청률은 4회 만에 8.3%(닐슨코리아 종합편성채널 기준)까지 뛰어올랐다.

촘촘한 대본 위에 배우들은 즐겁게 뛰논다. 윤석훈 역의 이진욱은 이제야 제옷을 입은 듯 작품에 무게를 싣는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두 힘이 있다. 너무 완벽한 답이라 오글거릴 수 있는 대사를 자신만의 톤으로 전달하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정채연은 무거운 옷을 제법 잘 소화하는 편이다. 워낙 능력이 출중하고 똑똑한 강효민을 20대 연기자가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법적인 내용의 이해가 분명해야 아우라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채연의 얼굴에는 신임 변호사의 열정이 포착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철학적인 딜레마를 작품에 녹인다는것 자체가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이 있어서다. 자칫 이런 복잡한 문제를 잘못 썼다간 변호사를 두둔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박미현 작가가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문제를 느끼고 충분히 의미있게 답을 내렸기 때문에 이러한 대본이 나온 것”이라며 “구조적으로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짜여져 있어 흥행은 쭉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