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2014년 7월 ‘파인’이 처음 웹툰으로 나왔을 때, 이미 팬들은 영상화를 목적으로 한 작품이라는 걸 눈치챘다. 매체는 영화라고 콕 짚었다. 각종 캐릭터가 사건을 앞두고 그득그득한 욕망를 뾰족한 색으로 드러낸 점이나, 그릇을 찾아 사기를 친다는 단조로운 사건이 이유였다. 이미 10여년 전 커뮤니티에서는 캐스팅도 끝냈다.
실제로 몇 회 나오자마자 곧 윤태호 작가는 한 제작사와 판권 계약을 마쳤다. 그 후부터는 영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작화에 돌입했다. 윤태호 작가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인터뷰에서 “사람이 참 이상한게 영상화 계약을 맺고 작품을 쓰면 ‘실제로 구현이 가능할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만화적인 허용으로만 그려도 되는지에 물음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가 더 깊어진다. 서해바다가 깨끗하지 않은데, 어부들이 물 속에 들어가면 물이 보이는지 알아봤다. 갑자기 확 맑아진다고 하더라. 그래서 희동이에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영상화를 겸해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예상됐던 ‘파인’은 디즈니+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로 탄생했다. 11부작 장편 시리즈가 됐다. 긴 이야기임에도 사건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흘러간다. 인물을 묘사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쓰다,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형태다. 등장하는 모든 인간이 악한 한편, 준법정신도 있고, 순수하며 근면하다. 불법을 저지를 뿐이다.
“악인들도 다 성실했을 것 같아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경계를 타는 일을 할 뿐이지. 배를 타고 나갈 땐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 중요하잖아요. 시대의 무법자가 준법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러니가 생기는 거죠. 이 이야기는 그릇이 핵심이 아니라, 파인(촌뜨기)이 중심이에요. 그들의 욕망을 다룬 이야기죠.”

아무리 흥행한 작품이더라도 새로운 결과물이 원작자에게 모든 만족을 줄 수 없다. 일부 원작자들은 새로운 결과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 작가는 달랐다. 완전히 내려놓았다. 새 제작진에게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맡겼다.
“저는 새 결과물이 원작의 재방송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저도 한 명의 시청자일 뿐인 거죠. 감독님이 새 시나리오를 쓸 때 원작자인 저보다 원작을 많이 봤을 거라 생각해요. 1년 넘게 각색 작업을 하셨어요. 그럼 저보다 더 많이 알겠죠. 정 궁금한 부분이나 질문하실 때만 답변했어요.”
반응이 뜨겁다. 등장하는 배우 대부분이 관심을 받고 있다. 워낙 뛰어난 연기가 뒷받침됐다. 시청자들이 또 보고 싶은 캐릭터가 즐비하다. 꽤 큰 죄를 지은 오관석(류승룡 분)이나 오희동(양세종 분)을 처벌하지 못했다. 양정숙(임수정 분)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강윤석 감독을 비롯해 모든 배우가 시즌2를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리스크가 크다. ‘파인: 촌뜨기들’의 성공 배경엔 걸출한 웹툰이 있었다. 애초에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이야기도 아니다. 설계가 탄탄하지 않은 채 출발한 시즌제 드라마가 얼마나 혹독한 상처를 감내해야 했는지, 여러 작품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굳이 그 어려운 길을 ‘파인: 촌뜨기들’이 걸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해피엔딩은 제 유전자에는 없어요. 저는 파멸을 좋아해요. 그런데 시리즈는 희망적이잖아요. 시즌2에서 모두 몰살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즌2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하하. 소재는 충분히 있습니다. 얼마든지 새로 쓸 수 있어요. 시즌2 하고 싶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