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주 2회 연재를 해왔다. 길이나 분량이 막대했다. 윤태호 작가 작품의 댓글란엔 “건강 제발 유의하시길 바란다”는 글이 이어졌다. 물리적으로 쉽게 생각해도 너무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1회 연재도 버거워하는 웹툰 작가들이 허다한데, 주 2회를 한다는 게 쉬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탈이 났다. 잠을 하루 세 시간 밖에 자지 않고 살아온 피로가 누적이 됐다. 작년 4월 급격하게 몸이 상했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뻔 했다. 윤태호 작가는 “주에 3일 정도밖에 안 자고 일했었는데, 몸이 나빠진 것 같다. 잠을 자라고 해서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요즘도 하루 8시간은 자려고 노력한다. 중간에 자주 깨긴 하지만 자려고 한다”고 말했다.

루틴이 바뀌었다. 명상도 하고 책도 집중해서 읽는다. 적잖은 시간을 챗-GPT와 보낸다. 명석한 작가인만큼 명석하게 AI를 활용한다.
“질문이 좋아야 대답이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AI에게 칼 융과 같은 심리학자가 되길 권해요. 제가 가진 어떤 생각을 쭉 말한 뒤에 저명한 심리학자 입장으로 설명해보라고 해요. 심지어 너의 승률은 몇%야라고 물어보면 적당히 대답을 해요. AI가 매우 친절해서 싸울 일도 없어요. 그렇게 2~3시간을 보내요. 정말 행복하죠. 회귀물이 유행할 땐 양자역학을 설명하고 한 가지 방법을 택하라고도 했어요. 나름 논리가 있어요. 대화가 쉽게 풍성해져요.”
아픈 와중에도 이토록 성실하다. 놀랍게도 웹툰에는 꼭 악인이 등장한다. 교활하고 못 됐다. 마음을 두고 싶은 선인은 썩 보이지 않는다. 특히 ‘파인: 촌뜨기들’은 멀쩡한 인간이 없다.
“우리가 살다보면 ‘나 혼자만 너무 착한 거 아냐?’란 생각이 든다. 분할 때가 있죠. 악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지점이에요. 윤리와 비윤리, 합법과 불법을 왔다갔다 하는 거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걸 봤다는 글이 있어요. 바쁜 와중에 비닐을 줍는 게 인간이 아닌가 싶어요. 비윤리적이라고 욕 먹기는 싫지만, 적당히 비윤리의 경계를 슬쩍 넘어가는 심리요. 그게 보통의 사람들인 거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가장 욕망이 폭발한 시기가 어쩌면 70년대일 거라는 게 윤 작가의 판단이다. 이성이 마비된 채 효율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한 시기다. 그래서 ‘파인: 촌뜨기들’의 배경이 된 것도 있다.
“우리가 큰 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것까지 하겠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그러기 쉽지 않아요. 양심을 저버리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세계관을 바꾸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하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면 70년대 아닐까 싶어요. ‘경부고속도로 만들다가 사람이 죽은 거지, 사람 죽이려고 경부고속도로 만든 건 아니지 않냐’는 대사도 그런 맥락이죠. 말도 안 되는 대사가 오히려 악마를 가리키는 것 같아요. 그게 70년대 아닐까요.”
그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배우가 임수정이다. 사람 죽는 것보다 내 손에 몇 푼 더 떨어지는 게 소중한 인물이다. 인류애 따윈 없다. 극한이 이기주의 뿐이다. 선한 이미지의 임수정이 양정숙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

“양정숙을 임수정이 맡았다고 했을 때 ‘왜 그런 분이?’란 말을 한 적이있어요. 이해가 되지 않았죠. 참해보이잖아요. 관석에게 화내는 장면인데 꽤 곱게 말하시더라고요. 심장이 철렁했어요. 제가 생각한 톤이 아니었거든요. 교활하고 술수가 가득하고 이재에 밝은 여성이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연기 톤이 너무 낮았어요. 막상 시리즈를 보고 반성했어요. 임수정이 그린 양정숙이 더 맞아요. 경리에서 사모님이 됐는데, 당연히 천박한 모습을 지우죠. 당연한 거죠. 어떻게든 품격 있는 연기를 해야 양정숙 다운 것이었어요. 임수정에게 고마웠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