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명예 교수 ‘리더십 자유도의 비밀은 진정성’
리더십은 더 이상 지식이나 권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고, 효율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리더십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이번 스포츠서울의 ‘창조리더의 시대, 아레테’ 인터뷰 시리즈는 머리보다 몸과 마음, 영혼이 통합된 ‘전인적 리더십(ARETE)’의 의미를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각계의 리더들이 들려주는 통찰은 성과 중심의 시대를 넘어, 진정성과 윤리, 회복탄력성과 초월의 가치를 되살리는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리더십 포비아 시대 “지금 대한민국은 리더십 포비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리더십 및 행동동학 연구소장)의 첫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리더십 포비아? 리더가 되기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리더 자리를 기피하고, 리더가 된 사람들조차 자신의 리더십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가?
“변화와 위기가 상수가 된 초뷰카(VUCA) 시대입니다. 과거 신자유주의 시대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저물었지만, 답이 없는 이 시대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 프로토타입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답을 제시해주었던 리더는 정작 길을 잃고 헤매고 있고, 그럼에도 답에 대한 책임은 리더가 져야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구성원은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 자기가 감내해야 할 리더십의 역할에 대한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윤 교수는 30년 넘게 리더십을 연구해온 한국 리더십 이론의 산증인이다. 그가 진단하는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는 단순한 세대 변화나 경영 기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리더십 위기의 본질 신뢰의 붕괴
윤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리더십 자유도(Leadership Flexibility)의 문제다.
“리더십 자유도란 리더가 상황에 맞게 리더십 스타일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폭입니다. 답이 있는 문제는 탑다운으로, 답이 없는 문제는 상향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많은 리더들이 스타일을 바꾸는 순간 구성원의 신뢰를 잃습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고 하자, 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평소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갑자기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구성원들은 또 뭔가 꾸미는구나 책임 떠넘기려는 거 아니야?라고 의심합니다. 반대로 평소 수평적이던 리더가 위기 상황에서 지시적으로 나가면 독재자로 변했다는 반발을 삽니다.”
문제는 리더십 스타일이 아니었다. 스타일을 바꿀 때 구성원이 그것을 진정성 있는 변화로 받아들이느냐, 보여주기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였다.
“리더십의 충분조건은 진정성입니다. 진정성이 확보될 때만 리더는 신뢰잔고를 축적할 수 있으며 신뢰잔고를 기반으로 리더십 자유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성의 정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
그렇다면 진정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윤 교수는 명확하게 답했다.
“진정성(Authenticity)이란 리더 자신에게 말하는 존재목적과 구성원에게 말하는 존재목적이 같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지되는가로 검증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어려울 때다. 순풍에 돛 달 때는 누구나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위기가 오면 말을 바꾼다. 구성원은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리더가 약속했던 진정성은 가짜였음을 알고 리더를 마음 속으로 해고한다.
“진정성 있는 리더는 평소 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하고 희생합니다. 그래서 리더십 스타일을 바꿔도 구성원들이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저렇게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우리를 위한 거야라고 믿기 때문이죠.”
그가 말하는 진성리더란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켜 신뢰잔고를 축적한 리더다. 성과와 능력이 넘어 상황에 따라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좌지우지 되지 않는 일관성이 진정성의 본질이다. 목적의 상실이 리더십 포비아를 낳는다. 윤 교수는 리더십 포비아의 본질을 존재 목적의 상실로 본다.
“리더 후보들이 리더 자리를 기피하는 이유는 답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왜 내가 나서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즘 기업들이 목적 없이 성과만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요즘 기업들은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성과만 추구합니다. 그런 회사에서는 구성원들도 리더도 모두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리더십 포비아에 시달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면 어느 순간 리더와 구성원 모두 소진되어 건강에 문제를 겪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대기업 직장인의 60% 이상이 실제 경계성 정신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진성리더십은 리더가 먼저 목적을 통해 자신의 마음, 몸, 정신을 일으켜 세우고 이를 통해 구성원의 몸, 마음, 정신도 일으켜 세우는 리더십 운동입니다. 테크닉이 리더십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존재목적은 리더십의 충분조건입니다. 진성리더는 먼저 리더의 충분조건을 씨줄로 세우고 여기에 필요한 리더십의 테크닉을 날줄로 직조해 약속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올림픽 정신과 진정성 윤 교수는 스포츠 현장에서 진정성의 리더십을 발견한다.
“올림픽 정신의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승리를 위한 페어플레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은 모두 진정성에서 출발합니다. 도핑으로 얻은 금메달은 기술은 있지만 진정성이 없습니다.”
스포츠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우승의 기록을 넘어 진정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몸부림치는 순간, 패배했지만 상대를 축하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선수에게서 감동적인 진정성의 근력을 봅니다.
“88 서울올림픽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메달 개수 때문이 아닙니다. 분단 현실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구현했기 때문이죠. 2002 월드컵도 마찬가지입니다. 4강 신화보다 더 큰 감동은 우리가 모두가 같은 하나를 염원한다는 연대의 진정성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실천적 조언을 구했다. 윤 교수는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세 가지를 자문하십시오. 첫째, 나는 왜 리더가 되려 하는가. 둘째, 나의 존재목적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존재목적의 약속을 지키다 수차례 넘어졌는데도 다시 일어나는 근력이 있는가.”
그는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리더십 기법을 아무리 배워도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진정성 근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근력은 오늘 15K의 바벨을 들었다면 내일은 16K에 도전하여 성공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15K 들었던 사람이 갑자기 20K를 도전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매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의 축적이 진정성 근력의 비밀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레테, 즉 되어감의 과정입니다.”
윤 교수가 말하는 아레테(ARETE)는 완벽(Perfection)이 아니라 수월성(Excellence), 즉 매일 조금씩 더 근력이 쌓아지는 과정이다. 리더의 진정성도 마찬가지다. 하루 아침에 완벽한 리더가 되려 하지 말고, 존재목적의 약속을 더 잘 지키기 위해 매일 조금씩 더 진실한 리더가 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새로운 리더십 담론의 시작 이번 인터뷰는 아레테 리더스 서미트의 시작이다.
윤 교수는 이 협업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성(眞性)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은 리더십의 필요조건인 리더십 스타일을 넘어 리더가 리더로써 존재를 인정받는 리더의 진정성을 먼저 복원하는 리더십 운동이다. 진성리더십을 원형으로 사회의 각 영역에서 리더십을 아름답게 완성한 아레테 리더를 발굴해 전파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는 이어 스포츠 미디어가 새로운 리더십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갖는 상징성을 강조했다.
“스포츠는 진정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아레테 리더십을 논하는 데 스포츠 미디어만큼 적합한 플랫폼이 없습니다.”
[대담자 아레테 리더스 서미트 프로젝트 정의정 전문위원]
* 위 윤정구 교수 인터뷰는 앞으로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윤정구 교수가 제시하는 아레테 리더십은 단순한 경영 이론에 그치지 않고 AI 시대, 기술의 진보가 가속화될수록 그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은 ‘인간 중심의 리더십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다음 회에서는 기술의 민주화 시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