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소영 기자] 78억원 선발 자원이 한국시리즈 명단에서 낙방한 것도 모자라, 평균자책점 6점대다. 분명 구단도, 선수 본인도 원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오히려 최악에 가깝다. 한화 엄상백(29) 얘기다.
한화는 올시즌 LG에 막혀 아쉽게 대권에는 실패했지만, 19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등 유의미한 성적을 거뒀다. ‘만년 하위권’ 수식어도 떼어냈는데,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마운드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리그 최정상 외국인 원투펀치 코디 폰세-라이언 와이스를 비롯해 류현진, 문동주 등이 맹활약을 펼친 까닭이다.

다만 5선발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4년 78억원 거금을 들여 영입한 엄상백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길 바랐지만, 당장 내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시즌 한화 유니폼을 입은 엄상백은 28경기에서 2승7패, 평균자책점 6.58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퀄리티스타트(QS)는 단 두 차례, 안타율은 무려 0.324에 달했다.
시즌 내도록 몸값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전반기에만 평균자책점이 6.33을 기록했고, 한화는 엄상백 살리기에 나섰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기회를 줬으나, 후반기 평균자책점 7.56까지 치솟았다. 불펜 기록은 12경기, 1승1홀드, 평균자책점 4.60. 선발은 고사하고, 필승조 기용도 무리였던 셈이다.

가을야구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엄상백은 삼성과 플레이오프 2차전에 구원 등판해 0.2이닝, 1홈런 1볼넷 2실점 조기 강판 수모를 겪었다. 설상가상 한국시리즈에도 낙방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무엇보다 엄상백은 ‘가을야구 경력직’인 데다, KT에서도 선발을 소화했던 만큼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마냥 기다릴 수 없는 한화도 전력 보강에 나섰다. 아직 메이저리그(ML)로 떠난 폰세-와이스의 대체자는 찾지 못했지만, 내년부터 시행되는 아시아쿼터를 통해 대만 국가대표 출신이자 일본프로야구(NPB) 라쿠텐 2군에서 뛴 왕옌청을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에 영입했다. 올시즌 성적도 22경기, 10승5패, 평균자책점 3.26으로 호투했다.

유망주들과 경쟁도 불가피하다. 정우주, 황준서 등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가운데, 정우주는 생애 첫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선발과 구원으로 나가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떨쳤다. 기존 선발과 아시아쿼터제 도입 등으로 국내 투수들의 입지가 줄고 있다는 우려 속 엄상백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프로는 매 경기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엄상백의 입지가 위태로운 것은 분명하다. 2026년에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shon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