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나는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다리를 불태워라. 모두 불태워라(I’m never going back. Burn the bridge. Burn it all).”

르세라핌(LE SSERAFIM)의 콘서트에서는 이 선언이 울려 퍼질 때마다 일종의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과거로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불태우고, 오직 앞을 향해서만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지난 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르세라핌(김채원 사쿠라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의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EASY CRAZY HOT)’ 서울 앙코르 콘서트는 불타는 다리를 건너온 이들이 비로소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지, 팬덤 피어나(FEARNOT)와 취재진 앞에서 증명하는 자리였다.

대장정이었다. 르세라핌의 첫 월드투어는 지난해 4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시작으로 일본, 아시아, 북미 등 전 세계 20개 도시에서 총 31회에 걸쳐 펼쳐졌다. 사이타마, 타이베이, 홍콩, 마닐라, 싱가포르를 비롯해 뉴어크, 시카고, 라스베이거스 등 주요 도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도쿄돔에 첫 입성해 이틀간 8만 관객을 동원하며 글로벌 위상을 입증했다.

스포츠서울은 첫 출발 인천부터 정점이었던 도쿄돔을 지나 이번 서울 앙코르까지, 1년간 세 차례에 걸쳐 르세라핌의 투어를 목격했다.

성장세가 확연했다. 1년 사이 르세라핌의 보컬에는 에너지와 여유가 더해졌고, 김채원, 사쿠라,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까지 다섯 멤버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퍼포먼스는 월드투어 31회 공연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앙코르까지 이어진 열기도 식을 틈이 없었다. 공연의 포문을 연 ‘본 파이어(Born Fire)’와 ‘애쉬(Ash)’ ‘핫(HOT)’을 필두로 ‘이지(EASY)’ ‘스마트(Smart)’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크레이지(CRAZY)’ ‘언포기븐(UNFORGIVEN)’ ‘안티프레자일(ANTIFRAGILE)’ 등 전주만 들어도 심장이 뛰는 히트곡들이 세트리스트를 가득 채웠다. 글로벌 차트를 강타한 ‘스파게티(SPAGHETTI)’ 무대에서는 멤버들과 팬들이 하나 되어 춤추며, 잠실 실내체육관을 마치 거대한 EDM 클럽처럼 만들었다.

특히 이번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화려한 무대보다 빛난 르세라핌의 팀워크였다. 앙코르 공연에서도 한 멤버가 소감을 말할 때, 다른 멤버들은 동료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멤버들이 없었다면 이번 투어를 어떻게 했을까 싶다”는 말도 허울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서로를 소중하게 바라보는 눈빛까지, 이들이 지난 1년간 얼마나 서로에게 의지하며 가까워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르세라핌은 이제 앞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공연들에서는 자신들이 겪은 시련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면, 이번 앙코르에서는 눈물 대신 미소로 미래를 약속했다. 사쿠라는 “무언가 끝난다는 건 새로 시작한다는 뜻”이라며 웃었고, 허윤진 역시 “시작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정말 다르다”며 투어를 통한 르세라핌의 성장을 강조했다.

지난 역경의 시간 동안 세간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던 르세라핌이다. 때로는 가혹했고 때로는 억울한 순간도 있었다. 다만, 이들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원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무대에 올라 연습실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답했다. 월드투어를 함께한 수십만 명의 피어나가 그 증인이다.

르세라핌은 과거 대신 미래를 바라봤고, 원망 대신 성장을 택했다. 돌아갈 길을 스스로 불태워버린 르세라핌에게 과거는 이미 재가 됐기 때문이다. ‘애쉬’ 가사처럼, 그 재 위에서 새로 피어난 르세라핌은 이제 다음을 향해 걸어간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