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한국 솔로 아티스트 최초의 기록을 세운 로제, 그리고 K팝 제작진 최초의 그래미 트로피를 안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무대는 수상 여부를 넘어 K팝의 확장된 좌표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다만 그 성취의 이면에는 여전히 넘기 어려운 ‘그래미의 벽’ 역시 선명하게 드러났다.

로제는 2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 참석하며 국내 솔로 가수 최초로 그래미 본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로제는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히트곡 ‘아파트(APT.)’로 오프닝 공연을 장식하며 시상식의 문을 화려하게 열었다.

이번 그래미에서 로제는 ‘아파트’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를 비롯해 본상인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까지 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K팝 음악이 제너럴 필즈(본상) 두 부문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K팝 여성 아티스트로서도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결과는 냉정했다. ‘올해의 노래’는 빌리 아일리시의 ‘와일드 플라워(Wildflower)’에 돌아갔고, ‘올해의 레코드’도 켄드릭 라마와 시저의 협업곡 ‘루터(Luther)’가 수상했다.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역시 뮤지컬 영화 ‘위키드’ OST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를 부른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차지했다.

‘아파트’와 함께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메인 OST ‘골든(Golden)’,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의 ‘가브리엘라(Gabriela)’ 등이 후보로 오른 순간 자체도 의미가 있었지만 결국 트로피와의 거리는 ‘아직’이었다.

물론 의미있는 성과도 있다. ‘골든’은 사전 시상식인 ‘프리미어 세리머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이 상은 노래를 만든 제작진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이재, 테디, 24, 아이디오(이유한·곽중규·남희동)가 그래미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K팝 작곡가가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골든’의 수상은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가요와 영화,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콘텐츠 확장이 실제 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로제와 마찬가지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수상은 불발됐으나 K팝에서 출발해 한편의 영화로 완성된 K콘텐츠가 해외 유수 시상식에서 존재감을 발휘함으로써 글로벌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이번 그래미는 명확한 대비의 역사로 남을 전망이다. 로제는 무대의 중심에서 존재감을 증명했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제작진의 이름으로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영역을 넘나드는 K팝의 영향력은 분명해졌지만, 동시에 그래미가 허락하는 영역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난 셈이다.

결국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이번 그래미였다. 한국 솔로 아티스트 최초의 기록, K팝 작곡가 최초의 수상이라는 의미 있는 발자취에도 불구하고, 본상 앞에서 다시 확인된 그래미의 벽은 여전히 높았기 때문이다. 다만 K팝은 더 이상 도전자가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의 그래미 무대 한가운데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단계에 완벽하게 들어섰다는 점 역시 자명해졌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