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오송=원성윤 기자] “과거의 발효가 자연에 맡기는 ‘기다림의 미학’이었다면, 지금의 발효는 미생물을 제어하는 ‘정밀 과학’입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위치한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연구실 문을 열자 구수한 메주 냄새 대신 첨단 바이오 기업을 방불케 하는 분석 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매출의 5%를 매년 R&D에 쏟아붓는 샘표의 심장부다. 80년을 이어온 샘표의 저력은 더 이상 낡은 장독대에 머물지 않는다. 3000여 종의 미생물 데이터를 무기로 전 세계 식탁을 공략하는 ‘K-푸드 혁신’의 전초기지다.

◇ 하루 110톤 생산 공정을 축소판으로…‘미니 스마트 팩토리’

연구소 내부에는 독특한 공간이 눈에 띈다. 실제 공장의 거대 설비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다. 최용호 우리발효연구중심 실장은 “하루 110톤의 메주를 생산하는 거대 공정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구현한 미니어처 설비”라며 “연구원들이 콩을 찌고 균을 배양하는 모든 과정을 이곳에서 시뮬레이션하며 최적의 맛을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장인들의 ‘손맛’이나 ‘감’에 의존하던 방식은 철저한 데이터로 대체됐다. 온도, 습도, 공기 흐름까지 제어해 어떤 미생물이 어떤 맛과 향을 내는지 0.01%의 오차까지 잡아낸다. 최 실장은 “단순히 맛있는 장을 만드는 것을 넘어,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펩타이드와 아미노산 서열까지 분석해 ‘건강한 맛’을 구현(Module building)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 ‘연두’의 탄생, 서울-오송 잇는 R&D 시너지

샘표의 R&D는 ‘이원화 전략’이 핵심이다. 오송의 ‘우리발효연구중심’이 미생물 원천 기술을 개발하면, 서울 충무로의 ‘우리맛연구중심’은 이를 식탁 위로 가져오는 활용 기술에 집중한다.

글로벌 히트작 ‘연두’는 이 두 연구소의 시너지가 빚어낸 걸작이다. 오송 연구소가 콩을 발효해 고기 없이도 깊은 감칠맛을 내는 미생물 제어 기술을 완성했고, 서울 연구소는 이를 전 세계 다양한 식재료와 매칭하는 ‘푸드 페어링(Food Pairing)’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연두는 순식물성이면서도 미슐랭 셰프들이 “마법의 소스”라 극찬하는 글로벌 소스로 자리 잡았다.

◇ “요리가 놀이가 된다”…기술이 만든 식문화 혁명

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필수템으로 꼽히는 ‘새미네부엌’ 역시 고도의 발효 과학 산물이다. “김치를 10분 만에 만든다”는 콘셉트는 소비자의 조리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연구진의 집요한 분석에서 나왔다.

채소를 절일 필요 없이 양념만 버무리면 김치가 되는 기술은, 발효의 속도와 맛의 조화를 미생물 단위에서 제어했기에 가능했다. 최 실장은 “요리의 번거로움을 기술로 해결해, 누구나 요리를 놀이처럼 즐기게 하는 것이 우리 연구의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 바이오 소재로 확장하는 ‘발효의 미래’

샘표의 시선은 이제 식품을 넘어 바이오(Bio)로 향한다. 미생물 배양 기술을 활용한 천연 펩타이드 소재, 대체 단백질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업주 때부터 이어온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신념은 이제 “지속 가능한 미래 식문화”라는 글로벌 화두로 확장되고 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