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오송=원성윤 기자] “과거의 장(醬) 담그기가 자연에 맡기는 ‘기다림’이었다면, 지금의 발효는 원하는 맛과 향을 정확히 조립해내는 ‘건강한 설계’입니다.”
샘표의 R&D 심장부인 충북 오송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만난 최용호 실장은 발효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했다. 3,000여 종에 달하는 미생물이라는 연주자들을 지휘해, 전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30년 가까이 미생물과 동고동락해온 그에게서 ‘K-푸드’의 과학적 진화에 대해 들어봤다.
◇ ‘손맛’의 시대를 넘어 ‘데이터’의 시대로

최 실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데이터’였다. 샘표는 국립농업과학원과 공동으로 주요 균주를 보관할 만큼 방대한 미생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균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각 균의 ‘특기’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축구 잘하는 사람, 노래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미생물도 저마다 능력이 다릅니다. 어떤 균은 꽃향기를 내고, 어떤 균은 깊은 감칠맛을 내죠. 우리는 유전자 분석(Genomics)을 통해 나쁜 향을 내거나 독소를 만드는 유전자는 배제하고, 우리가 원하는 맛을 내는 ‘에이스 균’만을 선별해 사용합니다.”
과거에는 메주를 띄울 때 공기 중의 잡균이 섞여 들어가며 맛이 들쭉날쭉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샘표는 이 모든 과정을 통제한다. 최 실장은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아미노산)과 깊은 맛을 내는 효소의 작용 서열까지 분석한다”며 “어머니의 손맛이라 불리던 경험의 영역을 재현 가능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 셰프들을 홀린 ‘연두’의 비밀

이러한 정밀 제어 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요리에센스 ‘연두’다. 최 실장은 연두를 “콩 발효 기술의 정점”이라고 표현했다.
“서양 셰프들은 연두를 ‘닌자(Ninja)’라고 불러요. 요리에 넣으면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리는데, 전체적인 음식 맛은 기가 막히게 살려주거든요.”
전통 간장은 특유의 향과 색이 진해 서양 요리에 쓰기 어렵다. 최 실장은 미생물 제어를 통해 장 고유의 쿰쿰한 향과 진한 색은 없애고, 고기 없이도 고기 맛을 내는 100% 식물성 콩 발효액을 만들어냈다. 그는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와 협업할 때 셰프들이 ‘이건 마치 친구와 같다, 요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오케스트라 같다’며 극찬했다”고 회상했다.
◇ “10분 김치? 기술은 쉬워야 한다”

최 실장의 시선은 이제 ‘편리함’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히트 상품인 ‘새미네부엌’은 “왜 사람들은 요리를 어려워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김치를 담그려면 배추를 절이는 데만 반나절이 걸려요. 우리는 발효 기술로 이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김치 양념 안에 김치 맛을 내는 발효 모듈을 미리 넣어둔 거죠. 채소에 버무리기만 하면 10분 만에 김치가 됩니다.”
고난도의 발효 과학을 가장 쉬운 형태로 가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 최 실장은 이를 “요리를 노동이 아닌 놀이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 발효의 끝은 ‘바이오(Bio)’
인터뷰 말미, 최 실장은 식품을 넘어선 미래를 이야기했다.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창업주의 신념은 이제 바이오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콩 단백질을 잘게 분해하거나 구조를 최적화하면 흡수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집니다. 이는 환자식이나 노인식을 위한 고단백 소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건강기능식품의 원료가 됩니다. 우리가 가진 아미노산·펩타이드 제어 기술은 이미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맛있는 조미료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미생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류의 건강을 설계하는 바이오 기업. 최용호 실장이 그리는 샘표의 미래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