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배우 유지태가 다시 한 번 묵직한 얼굴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에서 그가 맡은 인물은 조선의 권력 핵심, 한명회다. 수없이 재현돼 온 역사적 인물이지만 유지태는 이번 작품에서 ‘아는 얼굴’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꺼내 들었다.

‘왕사남’은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의 시간을 따라간다. 영화의 중심은 권력의 한복판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역사를 견뎌낸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유지태 표 한명회는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존재다.

유지태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영화 속 한명회였다”며 “이미 소비된 인물을 다시 설명하기보다 ‘왕사남’이라는 세계 안에서 이 인물이 어떤 공기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장항준 감독 역시 기존의 한명회와는 다른 얼굴을 원했다. 유지태는 “감독님이 ‘완전히 새로운 한명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며 “그 말이 배우로서 욕심을 자극했다”고 회상했다. 악역이지만 익숙한 방식으로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본 한명회는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었다. 유지태는 “마음속으로는 왕이 되고 싶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왕처럼 행동하려 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그의 한명회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롭고, 인자한 얼굴로 상대를 압박한다. 그 침착함이 불안을 만든다.

등장 분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한명회의 존재는 영화 전반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유지태는 “단종을 유배 보낸 뒤에도 모든 상황을 계산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드러내는 악역’보다 ‘품는 악역’을 택했다. 유지태는 “대사보다 몸과 호흡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믿는다”며 “말하지 않아도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외형적 변화도 감수했다. 체중과 체형, 의상과 분장까지 모두 한명회를 구축하는 재료였다.

장항준 감독과의 조율 과정도 치열했다. 그는 “저는 조금 더 왕처럼, 인자한 톤을 상상했는데 감독님은 더 강한 무게를 원하셨다. 그 중간 지점을 함께 찾아갔다”며 “이 인물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감독님이 정확히 알고 계셨다”고 감탄했다.

극 중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유지태는 “이 영화는 결국 단종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라며 “박지훈은 단종을 담기 좋은 도화지를 가진 배우다. 15kg 가까이 감량하는 과정을 봤다. 그건 스타의 선택이 아니라 배우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지태는 “‘왕사남’은 배우들이 가장 뜨겁게 빛나는 순간, 그 시간을 함께 기록한 영화”라며 “사실 제가 천만 영화를 못해봤다. 제가 출연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동시에 관객에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남는 작품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