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낀 정체불명의 유령

‘엘리자벳’ ‘드라큘라’ 등과 정반대 ‘코미디 뮤지컬’에 도전

산 넘어 산, 식은땀까지 흘린 악동에 정신 바짝!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준수(39)가 완벽 변신에 성공, 티켓파워의 선두 주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괴하고 괴팍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도 찰떡궁합 연기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김준수는 4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정체불명의 무면허 저세상 가이드 ‘비틀쥬스’로 현재 열연 중이다.

무대 위 세상은 팀 버튼 감독의 1988년 동명 영화의 익숙함에 뮤지컬만의 색을 입혀 상상의 폭을 확장했다. 특히 코미디언 이창호의 각색 참여로 한국만의 ‘매운맛’을 더해, 2021년 초연과 비교가 안 될 만큼 거침없이 강렬한 말재간으로 유쾌·상쾌·통쾌한 가스라이팅을 이어간다.

98억 년 묵은 ‘악동 유령’으로 변신한 김준수는 몸은 물론 입까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는 묘기에 가까운 퍼포먼스와 애드리브로 매회 관객들의 웃음보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작품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김준수는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풀었다. 그는 “악몽까진 아닌데,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나쁜 꿈을 꾼 적 있다”라며 끔찍했던 그날의 밤을 떠올렸다.

◇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다고? 아, 정체불명 저세상 유령이지!

시작 전부터 첩첩산중이었다. 일단 스스로 인정한 ‘샤이가이’의 이미지를 벗어야 했다.

쇼뮤지컬 ‘비틀쥬스’는 지난 15년간 김준수가 해온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드라큘라’ ‘데스노트’ 등과 완전히 다른 장르이기 때문. 2024년 초연으로 만난 ‘알라딘’이 밝고 명랑해서 그나마 비슷하지만, 코미디극인 ‘비틀쥬스’와는 결이 달라서 교집합을 이룰 수 없다.

대사량도 다른 작품에 비해 2~3배 많았다. 상대 배우와 티키타카 할 수 있는 대사라면 그나마 안심인데, 대부분 독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속어, 비유법을 사용한 성적인 표현 등이 많아, 입안에서 대사가 맴도는 경우가 드물었다.

연습 당시 몇몇 장면에서 ‘현타’가 왔다는 김준수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의 인물들은 카리스마가 있는 역할이었다. ‘비틀쥬스’는 본격적으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망가지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김준수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캐릭터 연구와 불타는 도전정신으로 김준수만의 ‘비틀쥬스’ 완성에 몰입했다. 대본상의 고유 이미지는 살리되, 허용되는 범위에서 자신과 동떨어지는 표현은 자기식으로 조미료를 더했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진 ‘비틀쥬스’가 징그럽고 보기만 해도 흉측한 늙은 유령이라면, 그런 건 두렵지 않다. 나에게 안 맞는 옷을 입었다고 느껴질 때가 더 공포”라며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췄을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도록 이 부분을 선택하고 집중했다”

무엇보다 빠른 템포를 놓치지 않고 대사를 끝까지 이어가는 데 책임감을 가졌다. 김준수는 “대사가 속사포 랩처럼 나올 정도로 습득하지 못하면, 아예 ‘비틀쥬스’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자다 일어났을 때 ‘큐’ 사인이 나면 바로 대사를 읊을 수 있도록 달달 외웠다. 또 애드리브를 중간중간 섞을 수 있게 더욱 신경 썼다”라고 ‘비틀쥬스’ 극복기를 전했다.

◇ 개그 욕심 충만! 하지만 ‘이것’만큼은 지킨다

김준수의 우려와 달리, 공연은 개막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그는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억지로 웃음을 끌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김준수만의 ‘비틀쥬스’로 관객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지난해 12월 김준수는 개막에 앞서 진행된 ‘비틀쥬스’ 기자간담회에서 자신만의 캐릭터에 대해 “뮤지컬 업계 관계자들은 내가 개그 욕심이 있다는 걸 안다”라며 “귀엽고 깜찍한 악동의 이미지와 동시에 에너제틱한 ‘비틀쥬스’를 보여주도록 노력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무대 위 김준수의 ‘비틀쥬스’는 천방지축 괴짜 ‘금쪽이’에 가깝다. 그는 장면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그는 “정통 코미디극의 익살스러움만 좇는다면 괴리감을 느낄 것 같았다. 나만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만들려고 접근했다”라며 “1막 엔딩에서는 ‘드라큘라’나 ‘토드’처럼 악마같이 보이길 바랐다. 웃길 땐 누구보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비교적 썩 잘 버무려진 것 같다”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비틀쥬스’를 통해 ‘기적’을 경험했다는 김준수는 “다행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인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라며 “또래 배우들이나 어린 배우들이 내가 하기 전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던 작품인데, ‘비틀쥬스’의 다음 시즌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뿌듯하다”라고 어깨를 들썩였다.

배우와 관객들이 한껏 즐기면서 무대를 완성하는 ‘비틀쥬스’는 오는 3월 22일까지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미국 브로드웨이보다 더 강한 ‘매운맛’을 더한 ‘비틀쥬스’는 오는 3월 22일까지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LG SIGNATURE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