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무서울 정도로 정도(正道)를 걷고 있다.
넷플릭스 ‘스위트홈’과 JTBC ‘로스쿨’에서 의미 있는 눈도장을 찍고 영화 ‘헌트’에선 이정재의 페르소나가 됐다. tvN ‘환혼: 빛과 그림자’로 주인공 반열에 오르고 디즈니+ ‘무빙’으로 날아올랐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생활’로 차가운 여성미를 풍긴 뒤 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선 MZ의 톡톡 튀는 매력을 가감 없이 선보였다. 배우 고윤정이 걸어온 길이다.
사실상 국내 캐스팅 0순위 여배우다. 그리고 여성 캐릭터를 매우 풍부하게 그려내는 박해영 작가와 만났다. JTBC 새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다.

‘모자무싸’는 20년째 영화감독 데뷔 준비 중인 황동만(구교환 분)과 영화사 최필름 PD 변은아(고윤정 분)의 이야기다. 변은아는 남들과 다른 성향이지만 마음은 순수한 황동만의 매력을 찾고 심연의 본질을 찾아내는 인물이다. 세상 속에서 고립됐던 두 독특한 사람이 서로 딱 맞는 모습으로 성장을 이뤄갈 것으로 짐작된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로 인간 내면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따뜻한 인류애를 전했던 박해영 작가는 특히 여배우의 숨겨진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연기한 아이유(이지은)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뛰어난 배우로 거듭났고,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을 연기한 김지원 역시 체급을 확실히 높였다.

고윤정에게도 이번 작품은 배우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다. 그간 장르물과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를 오가며 시선을 뗄 수 없는 화려함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주로 발산해왔다면,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땅에 발을 붙인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치레를 한꺼풀 벗어던지고 인간 내면의 우울과 싸우는 변은아의 민낯을 어떻게 그려낼지가 이번 작품의 최대 관건이다.
다행히 상대역이 구교환이다. 힘을 뺀 일상 연기는 물론 설정이 짙은 연극적인 연기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다. 작품의 메타포를 교묘하게 담아내거나, 대본이 담지 못한 여백마저 순간적인 애드리브로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박해영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구교환과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 완벽한 환경이 주어진 셈이다.

이제 도약만 남았다. 다채로운 표현력은 물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외모와 통통 튀는 이미지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고윤정이 박해영 작가 특유의 짙은 인류애와 심연을 파고드는 서사를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기대가 쏠린다. 아이유, 김지원의 계보를 이어 고윤정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길이 남을 ‘인생 캐릭터’를 창조할지 주목된다.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