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추억 자극·젊은층 수요 확대
식품·주류업계 레트로 재출시 확산
브랜드 자산 활용한 마케팅 전략 강화


[스포츠서울 | 조선우 기자]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 속에서 식품·주류업계가 ‘과거’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단종되었던 과거의 히트 제품을 재출시하거나, 옛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정판을 잇달아 선보이며 굳게 닫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레트로’ 열풍은 기성세대에게는 잊고 지냈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고, MZ세대 등 젊은 층에게는 전에 없던 새롭고 ‘힙(Hip)’한 소비 경험을 제공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핵심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국내 라면 업계 양대 산맥인 농심과 삼양식품의 행보가 매섭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농심은 1975년 첫선을 보였던 ‘농심라면’을 전격 재출시해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제품은 올 3월까지 누적 판매량 2000만 개를 돌파하며 레트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과거 포장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당시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기반으로 하되 현재 높아진 소비자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춰 품질을 대폭 끌어올렸다. 핵심 원재료인 소고기와 쌀을 전량 국내산으로 엄선해 사용하고, 풍미를 극대화하는 후첨분말을 추가하는 등 프리미엄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한 것이 주효했다.
삼양식품의 ‘삼양1963’ 역시 레트로 마케팅의 성공적인 산물로 평가받는다. 재출시 5개월여 만에 월평균 700만 개 수준의 안정적인 판매량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1963년 국내 최초로 출시되었던 삼양라면 고유의 진한 맛을 재해석한 이 제품은 식물성 팜유 대신 과거 라면 특유의 고소한 풍미를 내던 소기름(우지)을 다시 배합한 것이 특징이다. 한때 업계를 흔들었던 아픈 과거인 ‘우지’의 기억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상징하는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으로 승화시키는 정면 돌파를 택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이러한 재출시 붐은 주류 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순한 맛의 저도수 트렌드가 주름잡던 소주 시장에 롯데칠성음료는 알코올 도수 20도의 ‘처음처럼 클래식’을 등판시켰다. 20년 전 레시피를 복원해 도수를 높이고, 당시 사용되었던 첨가물 배합 비율을 적용해 과거의 묵직한 맛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패키지 역시 초기 출시 당시의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디자인 요소를 적극 반영해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오비맥주 역시 과거 ‘OB맥주’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덧입힌 ‘오비라거’ 뉴트로 한정판을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친숙한 캐릭터 등 과거 디자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색감과 폰트를 세련되게 재구성해, 중장년층에게는 과거의 이미지를 환기하고 젊은 층에게는 시각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레트로 소비 확산의 근본적 배경으로 경기 둔화 속 ‘안전지향적 소비’와 ‘익숙함’을 중시하는 심리적 흐름을 꼽는다.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실패할지도 모르는 신제품에 지갑을 열기보다는 이미 맛과 품질이 검증된 친숙한 제품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레트로 제품들은 단순한 과거 베끼기에 그치지 않고, 최신 소비 트렌드와 기술력을 반영해 진일보한 ‘뉴트로(New-tro)’ 형태로 확장되는 흐름”이라며 “과거의 낭만적인 감성과 현재 소비자들의 깐깐한 니즈를 얼마나 정교하게 결합해 내는지가 향후 시장에서 기업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blessoo@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