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사극이 다시 젊어졌다.

무거운 궁중 정치, 왕권 다툼, 가문 간 대립만으로 움직이던 사극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사극은 로맨스, 판타지, 환생, 계약결혼, 빙의, 혐관 로맨스와 적극적으로 결합한다. 궁궐은 더 이상 권력의 공간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사랑이 시작되고, 신분이 뒤집히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장르적 놀이터가 됐다.

배우 임지연과 허남준이 출연하는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이런 흐름을 가장 최근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 8일 첫 방송된 이번 작품은 사약을 받고 죽은 조선 악녀 강단심(임지연 분)이 300년 뒤 무명배우 신서리의 몸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정통 사극이 아니다. 조선 궁중에서 시작하지만, 무대는 곧 2026년 대한민국으로 넘어온다. 조선 악녀의 영혼이 현대 배우의 몸에 빙의되고,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재벌 차세계와 만난다.

‘멋진 신세계’가 흥미로운 지점은 사극의 언어를 현대 로맨스의 장치로 바꾼다는 데 있다. 사약, 궁중 암투, 악녀 서사는 과거의 장면이다. 그러나 작품은 비극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해졌던 인물을 현대 사회에 던지고, 그 낯섦을 코미디와 로맨스로 전환한다.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도 사극의 젊어진 얼굴을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 가상역사, 정치,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로 아이유와 변우석이 출연한다. 제목부터 사극과 현대 로맨스를 겹친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 구도는 계약결혼과 신분 타파 로맨스다.

작품 속 궁궐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현대의 계급 문제를 비추는 무대에 가깝다. 왕실과 신분은 역사적 설정이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감정은 현재적이다. 성희주(아이유 분)는 신분의 벽을 넘기 위해 계약결혼을 선택한다. 이안대군(변우석 분)은 왕실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특권과 감당해야 할 제약 사이에 놓인다.

젊어진 사극은 여기서 힘을 얻는다. 과거의 제도를 빌려 현재의 감각을 말한다. 신분은 계급으로 읽히고, 궁궐은 상류사회로 읽힌다. 혼인은 로맨스이자 거래인 셈이다. 시청자는 낯선 의상과 익숙한 감정을 동시에 본다.

이러한 흐름은 시청층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젊은 시청자는 정통 사극의 무게보다 장르적 속도를 선호한다. 숏폼과 OTT에 익숙한 시청자는 초반 설정이 강하고 캐릭터가 빠르게 드러나는 작품에 반응한다. 그래서 최근 경향은 첫 회부터 강한 장면을 배치한다. 사약, 빙의, 계약결혼, 정체 위장 같은 설정은 시청자를 빠르게 붙잡는 장치가 된다.

물론 위험도 있다. 장르적 혼합이 지나치면 사극의 밀도가 옅어질 수 있다. 역사적 배경은 장식이 되고, 의상과 궁궐은 분위기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판타지와 로맨스가 강해질수록 세계관의 설득력은 더 중요해진다. 젊어진 사극이 오래 가려면 가벼운 설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캐릭터의 욕망과 시대적 조건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한다.

궁궐 안에서만 머물던 이야기가 더 빠르고, 더 영리한 얼굴로 바뀌었다. 로맨스와 판타지는 사극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극을 다시 젊은 시청자 앞으로 끌어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