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대부업과 폭력을 일삼는 조직의 말단 사원. 그저 운전이나 하는 어린 조직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대부분 주인공의 조력자에 불과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골드랜드’ 속 우기(김성철 분)는 다르다. 동네 양아치에 불과한 우기는 수천억 원대의 금괴를 떠안게 된 희주(박보영 분)의 곁에서 살벌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극의 핵심 동력이다.

김성철은 액션과 유머, 각종 복잡한 상황 설명부터 숨 막히는 긴장감 조성까지,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다중적인 롤을 특유의 리듬감으로 톡톡히 해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김성철은 “그간 쌓아왔던 연기 데이터와 경험을 우기에게 모두 녹여냈다”며 미소 지었다.

◇ “내 모든 경험이 곧 우기의 내공”

‘골드랜드’는 우기의 등장부터 속도가 붙었다. 1톤가량의 금괴를 얻은 희주에게 붙은 우기는 복잡한 금괴 세탁 과정과 위기 돌파 전략을 시청자와 희주에게 브리핑했다. 작품에 꼭 필요한 이른바 ‘설명충’의 롤이다. 대사가 많은 것에 반해 임팩트가 없는 장면이 많아 자칫 늘어지기 십상이다. 김성철은 이 위험한 역할을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 돌파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법자를 딱 봤을 때 대본 한 페이지가 전부 제 대사였어요. 감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는 애였죠. ‘아스달 연대기’의 입생은 배신을 거듭하며 살아남는 인물이고요. 그때 했던 경험들을 우기스럽게 바꿨어요. 내공이라기보단 제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쌓았던 데이터들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무겁고 짙은 스릴러 장르 속에서 우기의 역할은 철저한 ‘현실감’이다. 이광수가 맡은 박 이사나 최덕문이 맡은 안 회장, 이현욱이 연기한 이도경 모두 연극적인 요소가 짙다. 우기는 철저히 현실적인 인물로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분위기도 환기해야 했다.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는 인물인데 코미디 요소도 가져가야 해서 톤 조절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모든 대사 앞에 ‘누나’를 붙여봤죠. ‘누나, 내가 이랬었어’식으로 찰거머리처럼 굴면서, 짜증 나면서도 자연스럽게 입버릇처럼 나오게끔 애드리브를 준비했어요. 그러니까 보영 누나가 진짜로 짜증을 내더라고요.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그래야 희주가 진짜 짜증이 날 테니까요.”

세련미도 철저히 배제했다. 한 지역에만 머물렀던 밑바닥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촌스러운 추리닝과 목걸이를 장착했다.

“화장품 숍에서 제일 세일하는 염색약을 사서 노란색을 입혔는데 오렌지색이 나온 느낌을 냈어요. 날것의 표정이 잘 보이도록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고요. 그게 진짜 우기 같잖아요.”

◇ 박보영 향한 맹목적 보호본능, ‘순정 양아치’의 탄생

극 중 우기는 1500억 원 상당의 금괴보다 희주의 안위를 더 챙기는 듯한 기묘한 순애보를 보인다. 희주가 조금도 틈을 내주지 않는 반면 우기는 끝까지 의리를 지킨다. 행동은 진짜 사랑 같지만, 어딘가 배신할 것만 같은 불안감도 남긴다.

“우기에게 희주는 얼어붙어 있던 삶에 ‘얼음 땡’을 해준 사람이에요. 금괴보다는 철저히 김희주를 지키는 거죠. 저는 우기를 ‘시골집 지키는 진돗개’라고 생각했어요. 선 넘는 사람들의 최후를 잘 알기 때문에, 철저히 희주를 지켜야만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은 거죠. ‘낭만적인 순정 양아치’라는 키워드로 불릴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보영과 이광수에 대한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을 향해 진심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보영 누나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정확하게 연기를 잘할까 존경스러웠어요. 현장에서도 늘 결이 비슷해 타협점 없이 순조롭게 찍었죠. 반면 광수 형은 예능 이미지가 컸는데, 박 이사로 분해 망치를 들고 잔혹한 본성을 터뜨릴 땐 ‘나를 진짜 죽여버리겠구나’ 싶을 정도로 살기가 느껴져서 너무 무서웠어요. 엄청 집요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 대구 동성로 전력 질주부터 한겨울 팬티 투혼까지…“모든 건 기세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투혼도 빛났다. 인파로 가득 찬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서 이틀 내내 4~5시간씩 전력 질주를 거듭했고, 한겨울 축사 세트장에서는 팬티 바람으로 고문받는 신을 소화하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기세’다. 직업만 다를 뿐, 배우 김성철 본연의 당당함이 우기에게 깊게 배어있다.

“동성로에서 뛸 때는 진짜 열심히 했어요. 다리가 너무 뭉쳐서 어느 신은 적당히 뛰어도 됐을 텐데, 동성로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충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또 우기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게 열심히 생존하는 사람이라 증명하고 싶었죠. 인생을 살다 보니 결국 모든 건 ‘기세’더라고요. 안 돼도 일단 밀어붙이는 기세로 연기했습니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를 훌쩍 넘겼다. 그사이 장르와 매체를 오가며 탄탄하게 다져온 김성철의 내공은 ‘골드랜드’ 우기를 만나 완벽하게 만개했다. 끝으로 그에게 ‘김성철만의 골드랜드’가 무엇인지 물었다.

“저의 골드랜드는 ‘연기’ 그 자체예요. 어렸을 땐 선배님들이 ‘겸손해야 한다, 까불지 말라’고 하셨을 때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겠어요. 결국 ‘감사함’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라는 걸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