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사포판=김용일 기자] 진실하게 작성한 ‘오답노트’는 배반하지 않았다. 사전 캠프지인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부터 엿보인 디테일은 베이스캠프이자 결전지인 멕시코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이젠 광적인 응원 열기를 자랑하는 ‘홈 팀’ 멕시코와 겨뤄도 두렵지 않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12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아크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운명의 1차전’ 체코와 경기에서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6년 만에 ‘첫판 승리’라는 결실을 봤다. 같은 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제압한 멕시코와 나란히 승점 3을 얻으면서 조 1위 경쟁에 나섰다. 양 팀은 오는 19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맞대결한다.

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도 승승장구하다가 2014년 브라질 대회 때 지휘봉을 잡아 조별리그 탈락(1무2패)으로 첫 실패를 맛본 홍 감독은 12년 만에 사령탑으로 재도전, 감격스러운 첫 승리를 따냈다. 그는 “선수 때도 1990년 대회(이탈리아)에 처음 출전했다가 2002년 대회(한일)에서 첫 승리를 한 적이 있다”며 “고생한 선수들이 만들어줬다. 선수들이 잘했다는 말 외엔 할 게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대회 전까지 홍 감독을 비판한 이들도 ‘총명보’라는 애칭을 붙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대반전 배경엔 실패를 보약삼아 처절하게 품은 디테일이 있다. 5가지로 요약했다.

◇고지대 순응이 회피 이겼다
해발 1571m 아크론스타디움 환경을 두고 한국과 체코는 정반대 길을 걸었다. 한국은 지난달 19일부터 미국에서 고지대 적응훈련한 뒤 과달라하라에 입성했다. 뒤늦게 본선 티켓을 따내 베이스캠프 선택권이 없던 체코는 고지대 훈련을 포기, 노출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한국전 전날 과달라하라에 왔다. 대체로 1500m부터 고지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홍명보호의 준비를 두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따랐다. 하지만 결과가 증명했다. 체코는 후반 선제골에도 중반 이후 체력 저하로 흔들렸다. 경기를 주도하고도 한 방을 허용한 한국은 당황하지 않고 틈을 노려 두 골을 몰아쳐 뒤집었다.

◇부상·분위기 고려 훈련파트너
홍 감독은 사령탑과 행정가(축구협회 전무이사) 경험을 녹여 훈련파트너 3인을 본선에 동행하게 했다. 단순히 훈련 효과를 늘리는 것 외에 부상 변수에 대응하는 차원. 미국 캠프 기간 조유민이 부상으로 낙마했을 때 파트너로 동행한 조위제를 대체 발탁했다. 뒤숭숭한 분위기를 최소하하는 ‘신의 한 수’였다. 예민한 상태에서 장기간 합숙하는 월드컵에서 팀 분위기는 매우 중요하다. 중도 낙마자가 발생해 국내에서 새 얼굴이 합류하는 것보다 함께 땀흘려온 자원을 선택하는 건 천지 차이다. 체코전 ‘원 팀 모드’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이태석 선발 카드 적중
체코를 상대로 공격력이 좋은 옌스 카스트로프를 선발 왼쪽 윙백으로 써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홍 감독의 선택은 수비력이 좋은 이태석이었다. 체코 공격의 시발점인 오른쪽 윙백 블라디미르 초우팔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기대대로 세트피스 상황을 제외하면 초우팔은 이태석의 방어에 고전했다. 그의 전진이 막히자 최전방 파트리크 시크의 존재 역시 무의미했다.

◇농구인 노하우 접목 브레이크
전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전·후반 각 22분에 3분간 선수 수분 보충). 홍 감독은 오른쪽 라인의 이강인과 설영우를 불렀다. 이강인에게 중앙 지향적 움직임, 설영우에게 침투 등을 지시했다. 후반 황인범의 동점골 기점이 됐다. 홍 감독은 이번 대회 들어선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대비, 효과적인 지시를 위해 ‘작전 타임’에 익숙한 농구인과 소통했다. 흐름을 바꿀 ‘한 가지’에 주력하는 게 핵심이었다.

◇오현규·박진섭 확신 품은 용병술
0-1로 뒤지고 있을 때 홍 감독은 과감하게 손흥민을 불러들이고 오현규를 투입했다. 그는 보란듯이 1-1로 맞선 후반 35분 왼발 결승포로 화답했다. 이후 황인범과 백승호, 두 중원 자원을 빼고 김진규와 박진섭을 넣어 허리를 강화했다. 고지대 피로를 느낀 체코를 타이트하게 묶었다. 선수 데이터를 활용, 울산HD 사령탑시절부터 지속해온 확신에 찬 용병술이 월드컵 무대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kyi0486@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