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모든 스포츠는 전쟁의 성격을 갖는다. 그 중 축구가 단연 으뜸이다. 월드컵은 전쟁이 사라진 시대, 인간의 공격성을 대체하는 전쟁터인 셈이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48개국 중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사실상 패잔병이 됐다. 손흥민과 이강인을 비롯해 ‘황금 라인업’이라는 평가에도 남긴 초라한 성적표다.
민심이 들끓었다. 민심은 천심이다. 시작부터 공정하지 않았던 감독 선임, 무능한 전술 운용과 이해되지 않는 교체, 변명의 여지 없는 졸전에도 패배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허술함,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꼼수까지, 홍명보 감독은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을 행동만 했다. 그래서 하늘과 같은 민심이 분노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해괴한 저격이 나왔다. 야구선수 출신 김병현에게서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김병현이 저격한 인물은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 김영광이다. 앞서 김영광은 틱톡 오리지널 콘텐츠 ‘티키티키 타카타카 토크토크쇼’ 생방송에서 “홍명보 나가”를 외친 바 있다. 서열 문화가 매우 짙은 스포츠계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반말로 나가라는 식의 표현은 상당히 충격적이긴 했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이 옹호된 건 수많은 대중의 마음이 같기 때문이다.

대중이 이미 충분히 받아들였음에도, 김병현은 김영광을 저격했다. “‘홍명보 나가’라는 발언이 거슬렸다” “일반인이라면 그럴 수 있어도, 후배가 그래선 안 된다” “선을 넘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광이 선배 홍명보에게 너무 예의가 없었다는 게 요지다.
백번 양보해 김영광의 발언이 후배로서의 예의를 완벽히 갖춘 형태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작태는 사사로운 선후배 관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사령탑을 훔친 자가 전쟁에 참패하고 돌아오는 순간이다. 오히려 질문이 생긴다. 홍명보는 과연 국민에게 예의를 갖췄는가.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선임 과정부터 수많은 의혹과 절차적 정당성 상실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독단으로 사령탑을 꿰찼고, 끝내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사상 초유의 참사를 빚어냈다. 매번 경기에 패배할 때마다 선수 탓을 해왔다. 약체로 평가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패배했음에도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최악의 성과에도 경질하지 않는 협회나 어떻게든 자리를 보존하려는 홍 감독의 태도는 과연 온당한가. 비록 뒤늦게 사퇴했지만, 32강에 올랐다면 그는 또 대표팀을 지휘했을 것이다. 과연 국민의 눈을 가릴 수 있었을까. 홍 감독과 협회가 보여준 태도는 국민을 상대로 한 명백한 ‘예의 상실’이었다.
국민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지도자를 향해, 후배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예의만 차려야 한다는 논리는 공허할 뿐이다. 대중의 실망은 작은 규율보다 더 큰 책임 문제를 우선시한 데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김병현이 선수 공동체의 질서와 발언 수위를 문제 삼은 건 유의미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각은 대표팀 운영 책임이라는 더 큰 분노를 희석할 위험이 있다.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발언에 그친 셈이다. 그리고 대중의 끝없는 분노를 자극했을 뿐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