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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왼쪽)와 마이크 타이슨. 세기의 대결이 열리면 누가 이길까. 세계 복싱 팬의 끊임 없는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캡처 | sportsgalleries

[스포츠서울] 100년의 역사가 넘는 헤비급 복싱. 팬들은 역사상 최강의 복서로 누구를 떠올릴까.

시대는 물론 복서의 성향도 각기 다르기에 위대한 1인을 추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복싱이란 종목을 잔인한 스포츠에서 아름다운 예술로 극대화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무하마드 알리(73)와 마이크 타이슨(48)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남긴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딴 뒤 프로로 전향해 3차례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차례 타이틀을 방어도 성공했다.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켄 노턴 등과 1960~1970년대를 풍미한 세기의 복서다. 반면 1985년 프로복싱에 데뷔한 ‘핵주먹’ 타이슨은 만 20세 5개월로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것을 비롯해 WBC, WBA, IBF 등 3대 메이저 기구 타이틀을 모두 가져갔다. 알리를 잇는 세계 정상의 복서다. 그러나 복싱 인생 후반부는 먹구름만 가득했다. 1991년 강간혐의로 3년간 복역했고, 1997년 에반더 홀리필드와 경기에서 상대 귀를 물어뜯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5년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패한 뒤 링을 떠났다.

전성기의 알리와 타이슨이 맞대결을 펼친다면 누가 강할까. 복싱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단골 소재처럼 나오는 얘기다. 물론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운 사안이라 영원한 입씨름거리로 남겨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 시절을 지켜본 연령대의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50~60대 이상 팬들은 알리처럼 꾸준히 선수로 주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자는 없다고 강조한다. 상대한 선수도 타이슨보다 이름값이 뛰어났으며 설령 타이슨과 맞대결을 펼쳐도 신장과 리치에서 우위를 보여 유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감히 알리를 타이슨과 견줘서는 안 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나 40대 팬은 타이슨의 전성기 주먹은 천하의 알리도 쓰러뜨릴 만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알리가 그 시대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싸운 건 인정하나 타이슨도 당대 적수를 모두 물리친 전적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알리를 누른 적이 있는 조 프레이저도 타이슨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역사도 자주 언급한다. 후반부 사생활 문제로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이를 타이슨 복싱 인생의 전체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 ‘아웃복서’ 알리와 ‘인파이터’ 타이슨은 서로의 천적
알리는 아웃복싱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강한 펀치보다 빠른 스텝,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카운터 타이밍을 최소화하는 스타일이다. 받아치기 능력도 정상급이어서 상대로선 까다로운 유형이다. 1965년 5월 소니 리스튼을 상대로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을 치른 경기가 대표적이다. ‘터프가이’로 불린 전 챔피언 리스튼을 1라운드 2분여 만에 침몰시킨 건 알리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리스튼이 왼손 주먹을 뻗으며 접근했을 때 알리는 뒷발을 빼고, 스웨이 동작을 하다 오른손으로 카운터를 적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쓰러진 리스튼은 물론 관중도 어안이 벙벙했다. 알리에게 ‘팬톰(유령) 펀치’, ‘팬톰 복서’라는 별명이 붙여진 계기가 됐다. 반면 타이슨은 알리와 정반대인 인파이터다. 빠른 전진 스텝으로 상대 안쪽을 파고들어 잽과 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1985년 3월, 만 18세 나이에 프로로 데뷔한 그는 그해 11월까지 8개월간 모두 KO로 11연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또 이듬해 9월까지 10개월 간 16경기나 소화했는데, 14경기가 KO 승리였다. 무서운 속도로 상체를 흔들며 달려드는 ‘맹수의 근접전’에 상대는 속수무책 당했다.펀치의 위력은 물론, 속도에서 그를 이길 자가 없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불의 천적이 물이라면, 물의 천적은 불이다. 아웃복서와 인파이터는 서로에게 천적이다. 전성기의 기량을 놓고 봤을 때 타이슨이 알리라는 존재에 대적할 자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알리, ‘타이슨 스승’이 길러낸 패터슨과 맞대결 주목
둘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꼽히는 건 플로이드 패터슨과 경기다. 타이슨의 스승인 커스 다마토가 길러낸 패터슨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미들급으로 나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프로로 전향해 1956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빠른 스텝과 강력한 주먹을 지닌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다마토가 패터슨을 키운 뒤 30년이 지나 타이슨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둘의 스타일은 상당 부분 유사하다. 알리는 패터슨과 두 차례 만나 각각 12회 KO, 7회 KO승을 거뒀다. 특히 1965년 11월 미국 라이베가스에서 치른 첫 만남에서 알리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알리는 1라운드 시작과 함께 현란한 주먹을 패터슨 안면에 적중했다. 누가 인파이터인가 의심할 정도로 알리는 우월한 리치를 앞세워 예리한 잽과 스트레이트를 연거푸 성공했다. 앞서 패터슨이 무슬림으로 개종한 알리를 조롱하는 말로 자극하긴 했으나 현격한 기량 차이가 보였다. 오히려 더 일찍 KO로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공격을 멈추는 등 패터슨의 자존심을 짓밟기도 했다. 알리는 상대의 심리적인 자극은 물론, 근접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이 장면을 두고 알리가 타이슨을 쉽게 잡으리라고 여기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패터슨의 펀치와 타이슨은 비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타이슨과 유사한 스타일의 선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정신적으로 앞선 모습을 보인 건 참고할 만하다.

타이슨 알리
캡처 | Deadspin


◇ 초반 타이슨, 후반은 알리…펀치냐 지구력이냐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은 전 WBA 세계챔피언 홍수환(65)씨는 ‘초반’은 타이슨, ‘후반’은 알리의 우세를 점쳤다. 이들의 인생 궤적과 닮은 셈이다. 홍 씨는 “경기 초반에 팽팽한 접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타이슨의 공세가 두드러질 것이다. 그러나 6라운드 전에 타이슨이 경기를 끝내지 못하면 지구력에 능한 알리가 후반부에 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타이슨이 당일 컨디션이 좋아 초반 펀치를 적중하면 알리를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우선 알리가 상당히 노련하고 잽까지 좋은 선수인 건 분명하다. 대체로 이길 때보면 전반부에 몇차례 잽을 성공하면서 후반부로 끌고간다. 그러나 타이슨은 워낙 빠른 선수이고, 상대에게 잽을 잘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흐름을 보면서 펀치를 제대로 적중하는 능력이 있다.” 반면 후반부로 들어가면 알리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후반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알리는 10대 시절 아마추어 무대에서 100승 5패를 기록하는 등 일찌감치 내공을 다졌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않았는가. 반면 타이슨은 알리보다 늦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했다.” 타이슨은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사고뭉치로 지내면서 청소년 보호시설에 수감된 적이 있다. 1980년에 복싱을 시작해 6년간 다마토의 지도를 받아 단기간에 챔피언에 오른 케이스다. 천재성에선 알리를 능가하나 경기 운영 능력에선 밀린다는 평가다. 전성기 때도 후반까지 진행된 경기에선 좀처럼 KO가 없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어찌 보면 알리와 타이슨의 맞대결 승부를 예측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수 있다. 오히려 타이슨이 알리처럼 경험을 더 쌓았다면, 신장과 리치가 비슷했다면 또는 알리가 타이슨의 스승인 다마토의 지도를 받았다면, 천재적인 감각을 조금 더 지녔다면 등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만한 가정이 필요할 법하다. 이처럼 완전한 복서는 없다. 그러나 알리와 타이슨은 오로지 자기만의 스타일로 복싱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기에 이 같은 흥미로운 추론은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건 둘은 서로를 “최고의 싸움꾼이 아닌 복서”로 존중하고 있으며 아직도 후배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