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한화 신성현
한화 신성현.2015.06.07대전|최재원선임기자shine@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또 하나의 무명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야구선수로 수 차례 굴곡을 겪었던 한화 내야수 신성현이 그 주인공이다.

신성현은 지난 6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kt전에서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로 짜릿한 역전승의 발판이 됐던 좌전안타를 터뜨려 주목받았다. 3-4로 뒤지던 6회말 조인성의 스리번트 때 kt 포수 장성우의 야수선택으로 무사 1·2루가 되자 신성현은 초구에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다. 2구째 볼에도 번트동작을 취하다 멈췄다. 그 때까지 움직이지 않던 kt 내야진이 3구째가 들어올 때 번트 타구를 잡기 위해 전진수비를 펼치자 잽싸게 배트를 거둬들이며 강공으로 전환해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벤치의 주문을 100% 수행한 것이었다. 이후 한화는 안타 2개로 주자를 모두 불러들여 순식간에 6-4로 승부를 뒤집었다. 그는 7일 같은 곳에서 벌어진 kt전에서도 0-3으로 뒤진 4회말 1사 2루서 왼쪽 담장을 때리는 큼지막한 2루타로 추격의 발판을 놓았다.

신성현은 한화 사령탑 김성근 감독과는 묘한 인연이 있다. 신성현은 덕수중을 졸업한 뒤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국제고를 졸업했다. 교토는 김 감독이 태어나서 고교시절까지 보낸 곳이다. 국내에서는 김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있던 고양 원더스에서 야구선수로서 ‘제2의 인생’을 열었고, 원더스 해체 이후 갈 곳이 없던 그를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김 감독이 다시 끌어안았다. 신성현은 “트레이너를 통해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었다”고 입단 당시를 돌이켰다.

신성현은 “사실 계속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지금까지 선수로 뛰지는 못했을 것 같다. 교토국제고는 원래 재일교포 학교였는데 내가 들어갈 때부터 일본인 학생들도 받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는 훈련량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유독 우리 학교는 훈련을 많이 했다. 덕분에 그 때 야구를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고교 졸업 후 신성현은 당당히 드래프트를 통해 히로시마에 입단했지만 1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2013년 다섯 번째 시즌을 마친 직후 히로시마는 그를 방출했다. 신성현은 “실력이 부족했던 것 뿐이다. 뭔가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구단이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준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팀을 찾아 일본 내에서 테스트를 받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원더스에 있던 친구를 통해 그의 사연이 김 감독에게 전해졌다. 김 감독은 매니저를 통해 신성현에게 연락했고, 신성현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련의 끝은 거기가 아니었다.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았고 겨울에는 팀이 해체됐다. 그러나 신성현의 재능을 눈여겨본 김 감독은 그를 육성선수로 불러들였고 이후 서산에 있는 육성군에서 재활을 받으며 재기를 위한 칼을 갈았다. 그러던 지난 달 27일 신성현은 육성선수 신분을 벗어나 정식선수로 등록됐고 지난 4일 목동구장서 열린 넥센전 8회초 데뷔 첫 안타를 터뜨렸다. 5일부터 벌어진 kt와의 주말 3연전에서는 연달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성현은 7일 kt전을 앞두고 “두 경기 연속 스타팅으로 나가다보니 긴장도 되고 힘들다. 팬들의 함성 속에 경기를 치르는 것도 낯설고 1군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도 없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다”면서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정말 이렇게 빨리 기회가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은 수비나 타격 모두 보완해야 한다. 신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잘하는 모습보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다. 떨어지지 않고 계속 1군에 붙어있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대전 | 박현진기자 ji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