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금지약물 검출로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박태환(26)이 지난해 6월1일 송파구 올림픽수영장에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훈련을 재개하고 있다. 최재원선임기자 shine@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징계는 풀렸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환경은 최근 날씨처럼 차갑다.

‘추락한 마린보이’ 박태환(27)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 받은 국제수영연맹(FINA)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그는 지난해 3월 23일 FINA 도핑관련 청문회에 나선 뒤 곧바로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 유효기간은 도핑테스트 직후인 2014년 9월 3일부터 2016년 3월 2일까지다. 이에 따라 박태환은 3일부터 선수 신분을 회복, 훈련은 물론 국내 대회에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월 도핑 양성반응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악몽 같은 날들을 보냈다. 자신에게 남성호르몬제 테스토스테론이 들어간 ‘네비도’를 투여한 김 모 의사와 8개월간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도쿄 모 대학 전지훈련을 추진했다가 해당 대학이 박태환을 받을 계획이 없다고 밝혀 오사카 한 클럽으로 이동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 달 초만 해도 박태환 측은 징계 해제 뒤 언론 공개 훈련 등을 진행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는 징계 기간 중에도 인터뷰를 몇 차례 했다. 선수 자격을 되찾은 이후 공개 훈련을 못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변 상황이 바뀌었다. 대한수영연맹 고위관계자가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당하고 연맹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자신의 수영클럽에서 현재 박태환을 가르치고 있는 노민상 전 대표팀 감독이 연맹 이사에서 해임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노 감독은 구속된 고위관계자에 매달 자신의 월급을 상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감독은 “간부에게 찍히면 수영계에서 퇴출된다. 상납이 아니라 갈취당한 것”이라고 항변하는 중이다. 박태환 측은 이런 수영계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측근은 “지금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다. 여러 요청들이 들어오지만 훈련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징계 해제 뒤 해외 훈련 계획도 일단 보류했다. 서울 올림픽수영장 등 국내에서 연습을 이어갈 생각이다.

무엇보다 박태환 자신이 명예회복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는 리우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것도 조용히 물살만 가르는 이유가 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2014년 7월15일 ‘금지약물을 복용해 징계를 받은 선수는 징계 만료일부터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6호)을 만들었다. 공교롭게 박태환이 이 규정을 적용받는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지난해 박태환이 FINA 징계를 받은 뒤 “이 조항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도 비슷한 사례에 무효 판결을 한 적이 있는 ‘이중처벌’이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체육계에선 지난해 가을 이 조항 철회를 검토해 박태환에 올림픽 참가를 통한 재기의 길을 열어줄 것처럼 보였다.

‘박태환 구제’ 움직임은 지금 ‘올 스톱’된 상태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이 이뤄지고 나면 통합체육회 출범 이후 제5조6호 등 국가대표 선발규정도 손볼 것으로 보였으나 지금 통합체육회 진행 속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까지 개입하면서 매우 더딘 게 현실이다. ‘박태환 구제’는 뒷전으로 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육계와 수영계에선 결국 박태환이 오는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확실히 알리는 게 리우로 가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갑자기 나온 의견도 아니고 지난해 그가 FINA 징계를 받을 때부터 제기됐던 것이다. 박태환이 선발전을 통해 기록으로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증명하면 체육계나 여론도 리우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 국민적인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박태환 부활’을 반대할 명분도 부족하다. 박태환 입장에선 제5조6호의 존재 자체가 훈련 등에서 심리적인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이 역시 그가 이겨내야 할 몫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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