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대훈
이대훈 선수가 18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2016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8강전에서 요르단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8:11로 패한 뒤 박수를 쳐주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I

[리우=스포츠서울 이정수기자]2016 리우 올림픽이 길었던 여정의 종착지에 다다랐다. 며칠 전부터 올림픽 경기가 마무리된 경기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경찰, 군인 등 대회를 위해 고생했던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하나 둘씩 떠나가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을 만큼 길게만 느껴졌던 리우 올림픽이 막을 내리려는 시점에서 각본없는 드라마들이 하루에도 수편씩 펼쳐졌던 지난 시간을 되돌려 보게 된다. 다소 생경할 수 있는 종목들까지도 가는 곳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중들이 자리해 놀라움을 전했다. 각국의 서로 다른 응원구호와 복색도 흥미로웠지만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꼴찌인 선수, 약자의 위치에 놓인 팀에 쏟아지는 함성과 응원이었다. 한국과 피지의 축구 조별리그에서는 한국이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역을 맡았다. 네덜란드와 치른 여자배구 8강전에서는 반대로 한국이 ‘꼬레아’를 외치는 관중들의 응원을 얻었다. 물론 브라질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자국 선수들을 향해 쏟아지는 응원열기가 어마어마했음은 당연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브라질 팬들은 정말로 열정적이었다. 꼴찌를 하더라도 경기장이 떠나갈듯한 환호성으로 자국 선수를 응원하고 자그마한 실수에도 다같이 안타까워하면서 선수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같이 호흡했다’는 말 이외의 적합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만큼 매 순간마다 반응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선수에게 응원을 보내며 함께 호흡했던 만큼 선수들의 감정을 이심전심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은주-홍은정
브라질의 일간지 ‘오 글로부’가 7일자 신문에 한국의 기계체조 대표인 이은주와 북한의 홍은정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올림픽을 즐긴다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경기에 나선 선수가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하는 것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이기기 위해 나선 경기에서 긴장감없이 즐기라는 말은 일견 좋은 말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경기를 했다면 결과에 만족은 못할지몰라도 인정은 할 수 있는 것. 관중입장에서는 비록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이 노력한 시간을 경기력으로 쏟아내며 정정당당하게 승부한 선수에게 박수쳐주는 것. 그것이 올림픽에서 만난 선수와 관중,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올림픽을 함께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브라질 관중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었다.

한국 선수단이 예상 외로 고전하면서 현지 취재진들 사이에서는 “우는 기사 쓰는 것도 고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메달을 따지 못해 속상한 것은 자신일텐데 누구한테 죄송한 것인지 고개숙이는 선수들을 보며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하기사 메달을 딴 선수도 결국은 눈물의 기사가 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역도선수 이희솔이 “후회없는 경기를 했다”고 웃으면서 취재진을 향해 “같이 셀까 찍을래요?”라며 스마트폰을 꺼낸 장면이 가장 신선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도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패하고도 승자의 손을 들어준 태권도 이대훈, 자신이 동경했던 북한 홍은정과 함께 사진을 찍은 기계체조 이은주, 경쟁자와 한 번 제대로 붙어봤다면서 만족한 복싱 함상명, 아내와 함께 준비해온 지난 시간이 즐거웠고 부상없이 마친 것이 감사하다는 역도 원정식 등 올림픽을 즐긴 선수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비난 보다는 ‘고생했다. 자랑스럽다. 멋있다’는 응원의 반응들이 더 많았던 것에도 시선이 쏠렸다.

경기에 나선 선수와 그를 이끈 지도자, 응원하며 지켜본 국내의 팬들, 브라질의 열정적인 관중들까지. 머나먼 남쪽 나라의 해안도시 리우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리우 올림픽이 모두에게 곱씹어볼만한 추억이 되면 좋겠다.

체육1부 기자 polaris@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