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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전 파나마에서 4전5기 신화를 쓸 때 상대였던 엑토르 카라스키야와 17년 만에 재회한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39년 전 세기의 명승부를 펼친 복싱계 두 별이 뜨겁게 포옹했다.

홍수환(66)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은 9일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대치동의 한 복싱 체육관에서 ‘4전5기’ 신화를 이뤄낼 때 링에서 겨룬 엑토르 카라스키야(56)를 만났다. 현재 파나마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카라스키야는 최근 공공외교 전문기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공식 일정을 보내면서 “홍수환을 만나고 싶고, 꼭 껴안아주고 싶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홍 회장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1977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두고 만났다. 홍수환은 당시 11전 11승 11KO를 기록중이던 카라스키야를 만나 2라운드에서 4차례나 링에 쓰러졌다. 모두가 카라스키야의 주니어페더급 역대 최연소 챔피언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수환은 3라운드에서 왼손 레프트 훅 한 방으로 카라스키야를 무너뜨리는 기적의 KO승을 거뒀다. 카리스키야는 홍수환에게 패한 뒤 1981년 은퇴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시의원과 시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둘이 재회한 건 1999년 국내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잠시 만난 뒤 17년 만이다. 홍 회장은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나 뿐 아니라 카라스키야 역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에도 경기 후 남자들만의 진한 우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1999년 방송이 우리의 인연을 더 크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카라스키야도 한국에 온 건 1978년 8월 19일 서울에서 황복수를 상대한 이유 38년 만이다. 이날 홍 회장은 황복수까지 초대해 더욱 값진 자리를 만들었다. 카라스키야는 “친구이자 형제인 홍수환을 만나서 정말 기쁘다”며 “홍수환과 황복수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카라스키야의 주먹을 만지더니 “여전히 딱딱하다”고 웃었다. 그러자 카라스키야는 “내가 홍수환을 4차례나 넘어뜨렸는데, 홍수환은 한 번 때려서 이겼다”며 주먹은 홍수환은 더 강하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홍 회장은 “내가 한국에서 4차례나 다운을 뺏고도 졌다면 카라스키야처럼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비참하게 진 건데 절망하지 않고 링보다 더 무서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둘은 취재진의 요청으로 눈싸움과 글러브를 착용하며 과거를 돌이키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정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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