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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왔다. 남도는 온통 분홍빛이다. 사람도 그렇다. 창원 용지공원.
[창원=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안 늦었다. 아직. ‘명불허전’이라는 진해군항제를 안 보고 봄을 맞고나면 역시 ‘허전’하다. 10일까지 하니 반쯤 지났다. 연분홍 꽃비는 지금부터 내린다. 대한민국 해군도시 진해는 무시무시한 강철 전함보다 연분홍 꽃구름으로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곳이다. 얼마전 화제를 모은 롯데월드타워 불꽃놀이는 댈 것도 아니다. 왕벚나무 36만 그루가 펑펑 터진다. 벚꽃이 아름다우려면 배경에 파란색이 있으면 좋은데 진해에는 그만큼 새파란 하늘과 바다도 있다. 매년 25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국내 최대 꽃축제인데, 흠… 안가면 좀 섭섭한 기분 그대로 무더운 여름을 맞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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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군항제가 열리고 있다. 아직 안늦었다. 제공 | 창원시청
◇향기가 진해

말 그대로 꽃의 도시가 펼쳐졌다. 비록 취재는 꽃이 아직 이를 때 다녀와야 하는 운명이지만 며칠 전 받아 본 사진은 궁둥이를 잠깐 들어 올렸다 놨다.

곳곳에 벚꽃이 ‘만개’했지만 사실 ‘천만개’도 넘는다. 진해선 선로가 통과하는 경화역 벚꽃터널(800m), 여좌천 개울을 덮는 연분홍 벚꽃지붕(1.5㎞), 멀리서 보면 분홍 띠를 두른 듯 보이는 안민고개 등이 가장 멋지다. 열차가 지나칠 때면, 또 바람이 살짝 불어올 때면 경화역엔 꽃비가 내리고 여좌천에는 꽃냇물이 흐른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안민고개를 넘을 때, 와이퍼는 빗물이 아닌 꽃잎을 닦아내는 용도로 쓰인다.

경화역은 1926년 생겨났다. 이후 2015년 정기 운행이 끊기며 이젠 자리밖에 안남았지만 해마다 이때쯤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다. 군항제 기간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고 철길 양쪽으로는 아름드리 왕벚꽃 가지와 관광객들이 터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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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군항제 벚꽃명소 여좌천. 제공 | 창원시청

진해가 얼핏 일본 소도시를 닮은 것은 여좌천 때문이다. 양쪽에 석축을 쌓은 여좌천이 무려 1㎞ 넘게 뻗고 그 위에 벚꽃이 서로 가지를 맞대고 있다. 중간 중간에 놓은 다리는 자연스레 포토존이 됐다. 창원시는 여좌천 아래에 LED 꽃과 유채를 심었다. 연분홍 벚꽃과의 색상대비가 아주 근사하고 밤에도 어떤 화려한 ‘조명쇼’보다 아름답다.

경화역이나 여좌천보다는 늦게 물들지만 안민고개에도 산중턱에 왕벚이 가득하다. 특히 진해만 바다가 내려다보여 더욱 넋을 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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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군항제 벚꽃명소 여좌천(야경). 제공 | 창원시청

안민고개는 창원과 진해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진해가 천혜의 요새라는 것도 분지처럼 에워싼 장복산과 불모산, 웅산 등이 병풍처럼 섰기 때문인데 이 사이를 넘어야 들어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바다를 낀 진해가 큰 장도 먹을 것도 많아 창원으로부터 시집간 아낙들이 많았다. 명절이 끝날 무렵 아낙들이 장을 다녀오던 친정 식구들과 함께 만나던 곳이 고개 정상에 남아있다. 정상에 카페가 하나 있고 전망대도 있다. 망원경으로 꽃 가득한 아름다운 진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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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고개에서 바라보는 야경. 제공 | 창원시청

진해는 항구도시의 인상이 강하지만 산의 기세도 좋다. 독특하게 생긴 시루봉, 해병대의 상징인 천자봉 등 늠름한 산봉우리들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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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충무공 동상. 군항제는 꽃 축제가 아니다. 충무공을 기리며 시작됐다.

근 60년을 바라보는 장고한 역사를 자랑하는 군항제는 사실 벚꽃 놀이가 아니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출발했다. 진해 북원로터리에 충무공이 우뚝 서있다. 광화문보다 앞선 국내 최초의 충무공상이다. 1952년에 세웠다. 전쟁 통에도 여러가지 고증을 거쳐 세웠다. 인상과 표정이 익숙한 광화문의 장군 상과는 사뭇 다르다.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지냈는데 이것이 군항제의 시작이었다.

여좌천에는 역대 군항제의 사진을 전시 중인데 드문드문 빈 곳이 눈에 띈다. 예전에 군항제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면 자료를 찾아 창원시청에 가져다주면 전 국민이 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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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 예술가들의 공방, 갤러리, 커피숍, 레스토랑 등이 몰려있다.
◇마창진, 봄을 부르는 도시

요즘 진해를 둘러보면 어디나 사람이 많다. 이땐 창원이나 마산에서 쉬어가면 된다. 대한민국 계획도시 1호 창원은 깔끔하고, 경남의 중심도시였던 마산은 고즈넉하면서도 호방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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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봉암수원지의 신록. 꽃만 봄을 전하는게 아니다.

이곳에도 봄 냄새를 즐길 수 있다. 비상시 비행기가 내려앉을 수 있도록 설계한 16차선의 마창대로를 중심으로 정확한 네모 들을 그려내고 있는 창원 시내에는 한가운데 쯤 용지공원이 있다. 마침 창원을 찾은 날, 붉은 기가 강한 벚꽃 한 그루가 터질 대로 터졌다. 이것이 조화인지 만져보지 않으면 모를 탐스런 꽃송이가 한가득 달렸다. 아직 파릇하지 않은 잔디에는 봄볕을 즐기는 연인들이 꽃나무 아래에 누워 나른한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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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깃든 봉암수원지가 수채화 흉내를 내고 있다.

꽃만 봄을 전하는 게 아니다. 반갑기는 신록도 마찬가지다. 형광등 아래 소줏병처럼 순한 연두색이 찬란한 햇살을 이고 봄이 도래했음을 알린다. 마산 봉암수원지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에 수원지로 조성한 이곳은 뜻밖에도 어떤 단체에겐 꽤 익숙한 곳이다. 예전 진해 훈련단 시절 해병대 훈련장이 있던 ‘벽암지’가 바로 봉암수원지다. 그것도 온몸의 힘을 빼놓는 유격 훈련장이다. 해병대원이라면 누구나 ‘벽암지’라 그러면 손에 땀이 찬다. 옮긴 이후 포항에도 김포에도 ‘벽암지’가 생겼다. 천자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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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수원지를 한바퀴 둘러보면 아무리 꽃샘추위가 있어도 봄을 부정하지 못한다.

지금은 훈련장의 서슬 퍼런 분위기가 아니다. 하늘을 비추는 물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물가에는 신록 돋아난 가지가 뻗어있다. 어릴적 내 보물이었던 ‘왕자 크레파스’의 24색 중 그린 계열은 다 모여있는 듯하다. 산책을 나온 창원시민들의 노랗고 빨간 옷까지 더하면 아예 크레파스의 모든 색이 봉암저수지에 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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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팔레트나 크레파스 상자처럼 다양한 색을 내는 마산 봉암수원지의 신록.

쉬엄쉬엄 호수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40분이면 충분하다. 산정에 있는 수원지까지 걸어 오르는 시간까지 해도 1시간이면 봄을 둘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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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한 마산 중앙부두.

마산항 중앙부두에는 고 김주열 열사의 추모비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4.19혁명의 도화선은 바로 이곳에서 처참하게 떠오른 열사의 시신이었다. 1960년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시험을 보러온 김주열 열사는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천리 타향 마산에서 불귀의 객이 됐다. 그것도 독재의 하수가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몰래 수장됐다. 근 한 달 후 마산 앞바다에 시신이 떠올랐고 마산시민들은 저항했다. 이는 곧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지금 부두에는 추모의 벽과 시신 인양지점 등이 남아 열사의 뜻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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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봄을 불러온 고 김주열 열사 추모비.

“마산이 저항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독 마산은 저항의 시대정신과 관계가 깊다. 김 열사의 죽음으로 비롯된 시민의 분노는 혁명과 초대 대통령 하야로 이어졌고, 1979년 계엄령까지 선포할 정도로 거셌던 부마항쟁은 유신독재를 종식하는 열쇠가 되었다.

이래저래 봄을 부르는 곳이 마산, 아니 창원이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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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명물 저도 ‘콰이강의 다리’는 이번에 바닥을 유리로 새로 깔아 아찔한 스카이워크를 설치했다.

여행정보

●군항제 여행 상품=코레일관광개발은 4월 7, 8, 9, 10일 서울역에서 출발해 창원 중앙역까지 운행하는 당일 진해 기차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교통체증 부담 없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우리테마투어의 버스여행은 이달 10일까지 매일 서울에서 오전 6시20분 버스로 출발해 해군사관학교 거북선체험과, 제황산, 여좌천, 경화역 등 진해일원을 둘러보고 당일 돌아오는 일정이다. 1인 3만1900원, 우등버스 6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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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창동 예술촌에 공연장이 생겼다.

●누비자=창원의 공용자전거 시스템 ‘누비자’는 1000원 만 결제하면 하루 종일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대여한 자전거는 90분 마다 교체해서 타야한다.●숙소=창원 전시컨벤션센터(CECO)에는 글로벌 호텔체인 아코르의 최상위 브랜드 풀만(Pullman)의 풀만앰배서더창원이 있다. 인근 마트와 쇼핑몰, 푸드코트와도 바로 연결되어 있어 편의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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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창동 신라초밥의 김치마키 초밥.

●먹거리=마산 오동동 ‘아구찜 거리’와 ‘통술거리’는 식사를 겸해 한잔하기에 딱이다. 창동 부림시장 인근 신라초밥은 그 역사가 오랜 집이다. 대를 이어 마산의 초밥맛을 지키고 있다. 마산어시장에서 바로 들여온 싱싱한 횟감이나 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솜씨도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씻은 김치로 말아낸 김치마키는 이 집의 자랑거리다. 서울에 비하면 값도 저렴해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 만족도가 높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055)243-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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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횟집의 미더덕회.

바다에도 봄꽃이 피어났다. 국내 미더덕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마산 진동면 고현에 위치한 이층횟집은 싱싱한 미더덕을 회와 무침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른 손가락만큼 커다란 미더덕만 골라 먹기좋게 손질해 상에 올린다. 향긋한 바다향과 고소함이 입을 가득 채우는 미더덕 회는 다른 곳에선 맛보기 힘든 별미다. 특히 미더덕을 까서 밥에 비벼먹는 미더덕덮밥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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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면 고현리는 국내 미더덕 생산량의 60%를 공급할 정도로 명산지다.

이름은 이층횟집이지만 1층에 있다. 과거 이 일대를 통털어 유일한 이층집이었기 때문이다. 마산합포구 진동면 미더덕로 345-1.(055)271-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