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2017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출처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작년에도 이 상에 관심 있었는데, 김연아 앞에서는 가당치 않다. 허허.”

축구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차범근(64)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감격스러워했다. 차 전 감독은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7년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뒤 “축구계 사정이 편치 않다. 이런 즐거운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는데 스포츠영웅으로 뽑아주신 많은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도 (수상 후보로 선정돼) 관심이 있었는데 (수상자로 선정된) 김연아 앞에서는 가당치 않다”고 웃으며 “내가 투표했더라도 김연아를 찍었을 것 같다. 그래도 박찬호, 박세리 같은 쟁쟁한 후배 틈에서 관심받고 수상해 기쁘다”고 했다.

그는 “이 상은 내 축구 인생의 마침돌이 돼 준 상으로 여긴다”며 “만 18세에 국가대표 선수가 돼서 지금 예순을 넘긴 나이가 됐다.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듣다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흑백TV에 앉아 동네축구인이 축구를 보던 그 시절의 팬들에게 따뜻한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 전 감독은 A매치 최다 출장(136경기)과 최다 골(59골)을 기록했고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308경기 98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두 차례나 유럽축구연맹컵 우승을 거머쥐면서 아시아 선수 새 역사를 썼다. 선수 은퇴 후엔 국가대표팀 감독과 프로 팀 감독으로 활동했고 최근 들어 행정가로도 역량을 입증했다. 또 유소년 축구 교실을 꾸준히 운영하면서 한국 축구 미래 자원을 발굴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 1975년 체육훈장 기린장과 1979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상한 차 전 감독은 스포츠영웅 수상자로도 이름을 남기면서 축구인의 전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내일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초청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월드컵 조 추첨 행사에 간다. 우리가 경기를 더 잘 할 상대와 한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떨린다”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도 칭찬받지 못하는 후배들을 이 자리를 빌어서 격려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다보니 모두 후배이고 제자, 자식과 같다. 선수는 물론 일선지도자와 축구 꿈나무, 기자들까지 젊은 사람이 꿈을 두고 자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신명나게 일하지 못한다. 기가 죽어 있고 좌절해있다”며 “축구인으로 모든 것을 누리고 이 자리에 왔기에 미안하다. 이 상은 내게 책임을 묻는 상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며 축구 개혁의 보탬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헌액식에 참석한 아내 오은미 씨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아내가 사람이 많은 자리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데 왔다”며 “행여 내가 말을 길게 할까봐 지키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말을 해야겠다. 평생 축구를 위해서 사명으로 살아왔고 주인공으로 살았다. 대신 화살도 맞고 어려움을 대신 해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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