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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늘 사후약방문(死後藥防文)이다. 여론의 눈치를 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 부랴부랴 행동을 취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이 대회 3연패 쾌거를 일구고 돌아온 뒤에도 비난 여론이 사그라들지 않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내용없는 반성문을 공개했다.
KBO는 5일 “회원사들과 신속하게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깊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협의를 거쳐 향후 한국야구의 수준과 국제 경쟁력 강화는 물론 저변 확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2022년 9월 열릴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아시안게임에 한해서는 KBO리그 정규시즌을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대표팀 구성에 KBSA와 긴밀히 협의해 선발 기준과 규정을 새롭게 제정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급조한 반성문으로 보이는 근거다. 반성의 주체를 잘못 짚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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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이 분노하는 지점은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 있다.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있는지를 팬이 직접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야구를 향한 싸늘한 시선은 ‘리그 중단’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6월부터 대회가 끝난 9월까지 3개월 여의 시간 동안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최고 기구의 무능을 탓하는 분노다. 대표팀 출범부터 논란의 불씨를 안고 대회에 참가했고 원하던 바를 이뤘다. 성적을 냈으니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 것도, 죄인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수 선발 과정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고 그 논란이 금메달 획득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대회기간 중에 자구책을 마련해 종료 직후 치하와 함께 개선책을 발표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스스로 커미셔너로 불리기를 원하는 KBO 정운찬 총재나 야구인 출신 수장으로 야구계 혁신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KBSA 김응용 회장이 머리를 맞대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시간이 충분했다. 막연히 ‘금메달을 따면 논란도 사라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면 오산이다. 대회기간 중 자카르타 현지에서 선수단을 격려하고 금메달을 걸어주는 일은 굳이 KBO 총재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KBO 주관대회도 아닌 아시안게임에 총재와 사무총장 등 수장들이 총출동한 것도 민망한 일이다. 마치 ‘집권 후 처음 치르는 국제대회라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올드보이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최고 결정권자가 일의 본질과 자신의 치적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데 참모들까지 함께 춤을 춘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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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대표는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국민을 대신해 혹은 대표해 국제무대에 나서는 만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 선에서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옳다. 그 기준을 만들고 지도자들이 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해당 종목 단체의 의무다. KBO가 KBSA로부터 모든 권한을 이관 받았더라도 두 단체가 머리를 맞대 박수받을 수 있는 대표팀을 꾸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번 아시안게임은 KBO 수장과 현장 사령탑의 성과주의, KBSA의 책임회피가 빚은 참사 아닌 참사다. 땀 흘려 금메달을 딴 선수단이 오히려 죄인 취급을 받으며 입국장을 빠져나간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그리곤 늘 그랬듯 여론에 쫓겨 사후약방문만 내놓았다.
커미셔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 가운데 하나는 리그의 신뢰와 존경을 유지하는데 저해가 될 수 있는 리스크를 예견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