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힙스턴데 요즘 동년배들 다 여기 간다'. 친구에 직장동료에 사돈에 팔촌까지, 나만 빼고 다 가본 것 같은 그곳에 스포츠서울이 대신 가봤습니다. 글로 한 번 영상으로 두 번 핫플레이스를 전격 분석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스포츠서울 강지윤·윤수경 기자] 5월 한 달, 가장 핫했던 이슈는 블루보틀의 오픈이다. 2017년 서울 세계커피리더포럼에서 한국 진출을 암시했던 블루보틀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블루보틀은 다른 프랜차이즈와 어떻게 다를까? 긴 대기줄에서 허비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여러분의 주말을 위해 카페인 중독 K기자와 핫플 중독 Y기자가 대신 갔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위해 2017 'KNBC(Korea National Barista Championship)' 챔피언 국가대표 바리스타 방준배도 함께했다.


블루보틀, 키워드로 미리보기


#커피계의 애플

블루보틀은 커피 애호가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이 프랜차이즈의 원두에 실망하여 시작한 커피전문점이다. 차고에서 시작했다는 점, 미니멀과 프리미엄을 추구한다는 점,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 등이 애플과 유사하다. 뉴욕 타임즈에서 "스타벅스가 마이크로소프트라면 블루보틀은 애플이다"라고 평한 후로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고 있다.


#오모테나시 혹은 환대

창업주 제임스 프리먼의 사업 철학 중 중요한 하나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고객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식 접객 문화)다. 서비스를 넘어 접객의 정신으로 고객을 대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미한 최고경영자 역시 '환대 문화(hospitality)'를 성공 비결로 꼽았다. 이러한 주요 정신은 인테리어, 메뉴, 서비스 전반에 녹아있다.


#스페셜티 커피

스페셜티 커피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A)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생두로 만든 커피를 말한다. 생두가 가진 본연의 캐릭터에 최대한 집중하는 커피계의 '제3의 물결'로도 볼 수 있다. 블루보틀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블루보틀, 직접 가봤더니


오픈 21일 후인 지난 월요일 아침 7시30분, 블루보틀을 찾았다. 예상과 달리 매장 앞은 한산했다. 블루보틀의 기나긴 웨이팅은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며 화제가 된 바 있다. 블루보틀은 이에 대비하여 몇 가지 전략을 세웠는데 첫째, 중간합류는 불가능하고 둘째, 음료 주문은 첫 주문 1회에만 가능하고 셋째, 바리스타는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넨다.


블루보틀은 성수동을 첫 진출점으로 삼은 이유를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이 브랜드 철학과 잘 맞는다"로 꼽았다. 과거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의 특성을 반영해 인더스트리얼 콘셉트로 매장을 꾸몄는데, 이는 일본 전통 가옥을 개조한 교토 매장과 비교되며 '성의 없는 인테리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지화 전략을 영리하게 이용해 온 블루보틀이 '한국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기대가 모였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본 블루보틀은 혹평과 달리 따뜻한 미니멀리즘이 느껴졌다. 통유리로 된 로스터리와 개방형 아트리움에서는 '환대'의 철학을, 노출콘크리트와 스테인리스 커피바, 우드 테이블의 조화에서는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천장 곳곳 적나라하게 보이는 절단면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미국 블루보틀 유경험자인 Y기자 역시 너무 성수동스러워 블루보틀만의 느낌이 덜한 것 같다고 평했다.


노 와이파이와 노 콘센트 정책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 "핸드폰과 노트북 대신 단 몇 분이라도 커피와 멋진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라는 제임스 프리먼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한국 카페문화의 몰이해에 가깝다. 실제로 이날 콘센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을 가져와 작업 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블루보틀은 건물의 1층을 로스터리로, 지하를 카페와 바리스타들의 트레이닝 공간으로 구성했다. 전체 면적에 비해 카페 공간은 크지 않다. 미국 본사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는 스타벅스와 달리 블루보틀은 현지에서 로스팅한다.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지점별로 맛이 달라지진 않을까?


방준배 바리스타의 설명을 들어보자. "블루보틀의 커피 컬쳐를 담당하는 바리스타 마이클 필립스는 어느 매장에서도 동일한 맛을 구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로링(LORING)'을 사용하는 것이죠. 이 로스터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프로파일이 복사된다는 거예요. 쉽게 표현하자면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조리법으로 요리가 완성되죠."


카페의 중심에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커다란 바가 있다.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핸드드립 바를 중심에 배치, 많은 공간을 할애한 것이 인상적이다. 바에 올려놓으면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가장 안쪽에 뒀다. 방 바리스타는 "기계 뒤에 바리스타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벽이 존재하는 거예요. 브루잉은 개방된 바에서 하기 때문에 손님과 조금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어요. 블루보틀이 핸드드립을 지향하는 것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환대 문화'의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친절한 블루보틀의 불친절한 아이러니


오픈 초 블루보틀은 베이커리류에만 한글을 혼합 표기한 '불친절한 메뉴판'으로 빈축을 산 바 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메뉴판에 한글이 추가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블루보틀은 메뉴마저 미니멀하다. 커피 메뉴는 11개, 논 커피 메뉴는 2개 뿐인 데다 시럽과 소스를 사용하는 커피는 '뉴올리언스'와 '모카'가 전부. 반면 원두 리스트가 따로 준비되어있을 정도로 다양한 블렌드와 싱글오리진을 선보인다. 프랜차이즈에서는 보기 힘든 핸드드립 커피가 메뉴에 있다는 것도 특징.


주문과 픽업 방식은 스타벅스와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문 시 터치패드에 기재한 이름을 바리스타가 부른다는 것과 각 파트를 담당하는 바리스타가 따로 콜링을 한다는 것. 이날 '지브랄타', '뉴올리언스', '온두라스 산타 바바라 레예스 핸드드립'을 시킨 K기자는 총 세 명의 바리스타에게 각각 음료를 받아야 했다. 경제적이지 않은 방법이나 맛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는 온도에 예민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리스타가 손님 앞에서 우유를 푸어링(pouring·붓는)하고, 드립 서버에 담긴 커피를 잔에 담아줬다는 점. 환대의 정수를 맛보는 순간이자 프랜차이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섬세함이다. 오픈 초 2시간의 웨이팅 끝에 커피를 맛봤던 핫플 중독 Y기자는 이런 접객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바쁨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는 모양.


많은 사람이 앞서 지적한 대로 블루보틀에는 트레이가 없다. 커피를 받은 후 몇번이나 자리에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인상적인 서비스 후 직면한 이 난감함이란. 트레이를 배치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 블루보틀의 관계자는 "현재까지 트레이가 준비되어있지 않지만,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고객님이 원하면 함께 도와 가져다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커알못 사이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준 바리스타 방준배

블루보틀, 직접 마셔보니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인 '지브랄타'는 농도가 진한 라떼다. 요즘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한 카페가 그러하듯 아주 작은 잔에 담겨 나온다. Y기자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한 입 거리'

"지브랄타는 코르타도, 플랫화이트처럼 우유와 커피의 비율을 거의 동일하게 해서 만드는 음료예요. 얇고 실키한 거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마셔보니 나쁜 맛이 없고 밸런스가 굉장히 좋은 커피라는 게 느껴지네요." 방준배 바리스타의 전문적인 의견에 K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쓴맛이 강하게 났고 다른 카페의 커피에 비해 우유의 향이 오래 남았다.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인 뉴올리언스는 블루보틀 방문 전부터 기대했던 메뉴다. 커피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치커리가 함유된 커피이기 때문이다. 분쇄한 구운 치커리를 함께 침출시켜 만든 콜드브루에 우유와 유기농 설탕을 첨가했다. 커피와 치커리, 우리에겐 다소 낯선 조화지만 알고 보면 역사가 길다. 1806년도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내린 이후 커피 공급이 어려워지자 커피 대용으로 치커리를 먹었다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뉴올리언스 지방에 치커리 커피가 전파되었고 뉴올리언스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기대와 달리 맛은 평이했다. 밍밍한 라떼에 밍밍한 단맛을 추가한 느낌이랄까. 구운 치커리의 맛을 찾으려 미각을 곤두세웠지만 실패했다. 방준배 바리스타의 의견은 달랐다. 커피와 우유와의 밸런스가 딱 좋다고. Y기자 역시 기분 좋은 단맛이라며 베스트 메뉴로 꼽았다.


방준배 바리스타와 K기자가 꼽은 베스트 메뉴는 온두라스 싱글오리진 핸드드립이다. "적당히 산미가 살아있고 신맛·단맛·쓴맛의 균형감이 좋네요"라고 근사하게 설명하는 바리스타의 고급스러운 입 말고, 막입 K기자에게도 풍부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산미가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커피는 단순히 쓴 음료가 아니에요. 다양한 풍미를 갖고 있죠.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커피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카페네요."


블루보틀, 파란병의 미학


"전문가가 보기에 블루보틀은 와볼 만한 카페인가요?"라는 우문에 방준배는 현답을 내놓았다.

"블루보틀 커피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건 시기상조예요. 아직까진 너무 맛있어서 기다리는 사람보다 경험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재방문율이 더 중요하겠죠? 또 첫 경험이 별로였던 분들도 한가할 때 다시 방문하면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어요. 바리스타도 머신도 손님이 많아 과열되면 100%의 컨디션에서 커피를 만들었을 때 보다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기다리지 않은 데다 좋은 컨디션의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좋은데요?"


파란 병이 얼마나 힙한가를 차치하더라도 블루보틀에는 특별함이 있다. 친절 이상의 접객능력, 바리스타들의 좋은 퍼포먼스, 개성 있고 신선한 커피까지. 긴 웨이팅과 몇백 원 더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방문할 만하다. 그래도 기왕이면 대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오픈 시간대에 맞춰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제임스 프리먼이 커피를 내려준다 한들 맛있긴 어려울 것 같으니...


사진 ㅣ 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 방준배 바리스타 제공

영상 ㅣ 윤수경기자 yoonss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