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이정은6가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위치한 찰스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74회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 | LPGA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힘들게 골프할 때가 생각나서….”

우승 소감을 묻자 폭풍 눈물을 흘렸다. 통역을 하던 매니저도 함께 울었다. 환희와 자부심은 물론 10년 넘게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가족과 지인들의 따뜻한 손길이 그 순간 느껴져 ‘메이저 퀸’은 눈물을 쏟아냈다. 폭풍눈물로 생애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첫 승의 기쁨을 드러낸 이정은6(23·대방건설) 얘기다.

이정은은 3일(한국시간) 여자골프 최고 권위 대회인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달러, 우승상금 100만달러)에서 데뷔 첫 우승을 따냈다. 역대 10번째 한국인 우승자이자, 데뷔 첫 승을 US여자오픈에서 따낸 6번째 한국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6이 행운을 가져왔다는 그의 생각대로 최종 스코어는 6언더파였다.

시상식에서 가진 약식 인터뷰에서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 레슨프로가 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엘리트 골프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가 여자골프 최고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은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집안이 부유하지 못해 빠듯하게 골프를 했다. 돈을 꼭 벌어야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었다. 한국에서 3년간 투어 생활을 한뒤 미국으로 왔는데 환경도 좋아 즐기면서 골프를 하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고 폭풍눈물을 쏟은 이유를 공개했다.

우승
이정은6가 자신의 이름이 가장 위에 있는 리더보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LPGA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이정은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5학년 때 골프를 그만뒀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고향 순천에는 당시만 해도 여성 교습가가 없어 세미프로가 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게 엘리트 골프 선수의 길을 선택한 이유였다. 이정은은 우승 인터뷰에서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우승하면 꼭 라면을 먹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모처럼 한국 라면을 먹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소박하면서도 애잔하게 느껴지는 목표를 설정한 것도 그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다.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100㎏짜리 역기를 들고 스쿼트를 할 정도로 독하게 체력을 키웠고 남다른 승부근성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강했지만 그는 “반드시 성공해 나를 도와주신 분들께 보답해야 한다”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지 2년 만인 2014년 베어크리크배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따낸 뒤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름을 올리더니 2015년 호심배를 제패한 뒤 태극마크를 달고 광주 유니버시아드 2관왕을 차지했다. 이 때부터는 고속도로였다.

이정은
이정은6가 3일(한국시간) 찰스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 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다부진 표정으로 드라이브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LPGA

유니버시아드 이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준회원 테스트를 통과한 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16년 KLPGA 정규투어에서 신인왕을 따내며 자신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2017년 상금왕과 대상, 다승, 평균타수뿐만 아니라 베스트 플레이어와 인기상까지 독차지하며 KLPGA투어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도 상금왕과 평균타수 1위에 오른 뒤 LPGA투어 시드권을 받을 수 있는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해 수석으로 미국 진출 기회를 잡았다. 2주 동안 144홀을 도는 강행군도 묵묵히 버텨왔던 비결은 어릴 때부터 혹박하게 다져온 강철 체력 덕분이었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다 부친이 휠채어를 타고 다니는 점 등을 고려해 미국 진출을 망설이던 이정은은 ‘마음편히 골프를 해보자’는 심정으로 LPGA투어 진출을 선언했다. 시즌 목표를 “컷 탈락없는 풀 타임”으로 잡은 이정은은 시즌 14번째이자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아 향후 10년간 ‘마음편히’ 골프를 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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