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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배우 송강호의 목소리에 특유의 흥이 실렸다. 영화 속에서 봤던 익살스러운 모습이 익숙한 듯도 하지만, 보통 인터뷰 자리에서는 잘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어서 최근 그의 기분이 여실히 느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주연으로 활약한 송강호가 함께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칸 레드카펫을 밟는 것만으로도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는데, 송강호는 세번째 칸 입성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봉준호 감독의 후일담으로 칸영화제 시상식 애프터파티 자리에서 송강호도 남우주연상으로 유력했지만 황금종려상과 중복 수상이 어려워 불발됐다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도 전해진다. 최근 만난 송강호는 “우리 영화가 남우주연상 카테고리에 가두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황금종려상에 모든게 다 들어가 있다. 전혀 아쉽지 않다. 나의 진심이다”라면서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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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빈부의 격차, 인간의 존엄성 등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그간의 시대적·사회적 메시지로 무게감 있게 다가온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확실하게 압도하지만 무겁지 않고,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유쾌한 웃음도 가득하다. ‘변호인’(2013), ‘사도’(2015), ‘밀정’(2016), ‘택시운전사’(2017), ‘마약왕’(2018) 등으로 ‘기생충’ 전까지의 필모그래피를 채웠던 송강호도 이번 영화를 다르게 기억했다.
그는 “촬영현장에서도 봉 감독에게 ‘오랜만에 부담없이 편하게 작업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좋은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그림자를 만들어주니까 참 편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어쩌다 보니까 혼자서 작업의 책임이랄까 온 무게감을 혼자 짊어지고 작업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어느날 봉감독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그동안 혼자 큰짐을 지고 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나눠지겠다’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 자기가 나눠지겠다고 하는데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전작들에 대한 이야기도 더했다. 송강호는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제가 일부러 그런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와 메시지, 시대적인 무게감을 꼭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영화를 한게 아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서 꼭 그런 작품의 제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송강호는 “작품은 운명처럼 만나는 거다. 운명처럼 만나는거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 사랑하고 의미가 있다. 거기서 맺은 인연이 다 소중한 인연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듯 송강호는 대한민국 서민의 표상과 같은 얼굴로 각인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는데, 과연 그 비결은 뭘까. 송강호는 “직업상 비밀이다”라더니 이내 “농담이다. 제 소견이라고 하면”라며 자신의 연기관을 이야기했다. “내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좋은 연기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관객이 느껴야하는거다”라면서 “제가 생각하는 제일 좋은 연기는, 내가 연기할 인물에 얼마나 어떻게 헌신하느냐가 가중 중요하다. 그래서 늘 그 마음을 견지해왔던 것 같다. 제 자신 자체가 연기를 통해서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건 아니다. 내가 어떤 식으로 헌신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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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기생충’에서 그린 기택은 몇마디 말로 인해, 그리고 그만의 냄새로 인해 박사장(이선균 분)에게 “선을 넘는다”는 인식을 주며 영화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데, 이 역시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준다. 송강호도 그랬는지 ‘선을 넘는다’는 이야기에 “아슬아슬한 경계가 있는 것 같다”면서 “선이라는게 되게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다. 냄새도 마찬가지다. 이 주관과 관념이 자기가 알지도 못하게 자기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 우리에게 어마어마하게 입체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걸 이 영화가 공포스럽게 보여주는게 아닌가 한다. 우리 마음속의 공포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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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번 영화에서 제 얼굴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얼굴이 있다면, 사건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 인디언 모습을 하고 박사장과 대화를 나눌때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택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다. 분노도 아니고 자기비관도 아니고 설명할수 없는 표정이 나온다. 영화로 보면서 내가 어떻게 연기했지 할정도다”라는 송강호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번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로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깊은 송강호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이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데, 송강호는 “처음 만났을 때도 커피 한잔 마시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느낌이 이분 뭐가 되도 되겠다 했다. 예의바름과 진중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000년 디렉터스컷 시상식에서의 재회 순간도 회상하며 봉준호 감독의 남다른 인연을 전했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플란다스의 개’와 ‘반칙왕’의 후반작업이 같은 사무실에서 하고 있어서 자주 마주쳤다. 개봉도 2주 간격으로 했는데, ‘플란다스의 개’는 잘 안되고, ‘반칙왕’은 잘 됐다. 나는 나중에 비디오로 봤는데 너무너무 재밌더라. ‘왜 처참하게 망했지’ 의아했다”면서 “나중에 디렉터스컷이라는 시상식에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반칙왕’으로 참석하고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로 신인감독상을 받으러 왔더라. 거기서 내가 ‘어제 영화 보고 소파에서 웃다가 굴렀다’고 그런 얘기를 막 전했다”고 회상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어떤 이야기도 즐겁게 쏟아내는 송강호는 요즘의 소소한 일상을 묻자 “너무 큰 즐거움으로 인해 소소한 일상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하기도 했다. 다음달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 영화 ‘나랏말싸미’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하다보니 가까운 시일내에 인사드릴 것 같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야기여서 또 다른 느낌의 영화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뒤이어 차기작을 묻자 “차기작은 결정된 게 없다”며 웃었다. 차기작 없이 이렇게 쉴 때도 있었나 싶은데, 그는 “저는 다작을 하고 싶은데 정말 다작하는 배우가 아니다. 연달아 두편을 하면 다작한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1년에 한편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해진 건 없다. 다른 배우들이 오늘 촬영 끝나고 다른 촬영 간다고 하면 너무 부럽고 나도 저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1년에 한 편 꼴로 찍지만, 관객들이 몰리는 극장 성수기에 연달아 개봉이 된다는 건 그만큼 송강호의 티켓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운명처럼 만날 새 영화는 어떤 작품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차기작도 극장가 대목에 상영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송강호가 차기작을 내놓은 뒤에는 또 어떤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cho@sportsseoul.com
사진| CJ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