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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선생님, 저희 상점 주시는 거죠?”
마침내 챔피언이 된 제자들은 관중석으로 다가와 스승과 마주했다. 야심 차게 요청한 우승 포상은 ‘상점’이었다. “쌓아 놓은 벌점이 너무 많다”는 애교까지 덧붙이자 스승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서울에서 창녕까지는 차로 4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 선수들이 우승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는 스승은 “힘들게 내려온 보람이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10점’이나 되는 통 큰 상점으로 선수들의 소원도 수리됐다.
고등부 명문고들의 탈락 이변 속에 서울동산정산고가 새로운 챔피언이 됐다. 동산정산고는 25일 경남 창녕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우포따오기 야생방사 성공기원’ 제27회 여왕기 전국여자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강원화천정산고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멀티골을 터뜨린 ‘주포’ 장유빈이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전반 40분 수비수를 제치고 만든 일대일 기회를 고스란히 살려 기선을 제압하는 선취골을 뽑았고 후반 23분 박세연의 패스를 이어받아 침착하게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화천정산고는 후반 31분 노하늘의 프리킥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며 추격에 불씨를 당겼다. 그러나 1점 차의 아슬한 리드는 끝까지 이어졌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벤치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도자들과 함께 부둥켜안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1991년 창단한 동산정산고는 전신인 위례상고 때부터 강일여고(1990년 창단)와 함께 한국 여자축구의 초기 기반을 다진 팀이다. 28년간 전국 대회 우승 횟수만 무려 54회에 달한다. 그러나 유영실 전 감독이 갑작스레 물러난 2014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왕기에선 통산 5차례 우승을 거뒀지만 최근 우승은 ‘국가대표 에이스’ 지소연(첼시)이 1학년이었던 20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13년 만의 우승에 성공하면서 명예회복의 신호탄을 쐈다. 울산현대고, 광양여고 등 최근 고등부를 주름잡던 ‘강호’들이 미끄러지는 변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안태화 동산정보산업고 감독에게는 더 값진 우승이다.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돼 지난 4년간 지휘봉을 잡고 있지만 매번 고지를 눈앞에 두고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전국대회를 제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가 끝난 뒤 안 감독은 “예전에는 우승팀이 계속 정상에 올랐지만 중학교 선수들이 골고루 진학하면서 고등부 전력이 평준화됐다”며 “우리는 장유빈이라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있어서 밀집수비를 통해 공을 빼앗으면 역습으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를 그라운드에서 실현하려고 그간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줬기에 마침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고등부 최우수선수의 영광은 동산정보산업고의 수비수 진현정(18)에게 돌아갔다. 화려한 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포지션은 아니지만 항상 제 자리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뛴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진현정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승도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인데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건 선수로 뛰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기분은 정말 좋다”며 “나 혼자 잘한 게 아니라 동료들이 다 함께 잘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 꼭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함께 뛰는 게 팀이다. 앞으로 계속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되긴 하지만 오늘은 즐기겠다”며 활짝 웃었다.
한편 중등부에서는 경북포항항도중이 충남강경여중을 4-0으로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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