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kt 박경수.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수원=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20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 KT가 이날 열린 2019 KBO리그 정규시즌 홈경기에서 키움에 5-0으로 앞선 7회초 수비 때였다. 2사 후 키움 송성문이 KT 주권을 상대로 친 타구가 3루 더그아웃 옆 익사이팅 존 위로 떠올랐다. 황재균이 부지런히 따라가 포구를 시도했지만 방수포 탓에 반 발 가량 모자랐다. 결과는 파울.

순간 2루수 박경수가 더그아웃쪽을 바라보며 황재균을 손으로 가리켰다. 벤치에 있던 선수단에게 본헤드 플레이가 아니냐는 일종의 항의 제스처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제 위치로 돌아온 황재균도 이 모습을 봤다. 그러더니 손짓으로 방수포를 가리키며 장애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짧은 눈짓을 교환한 뒤 경기는 속개 됐고, 송성문의 타구는 공교롭게도 박경수 정면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어렵지 않게 이닝을 끝내고 더그아웃으로 철수하던 황재균은 주권과 또 한 번 눈빛 교환을 하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와있던 박경수는 큰 소리로 농담을 던지며 더그아웃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포토]복귀 홈런 황재균, 동료들의 축하 세례
KT 황재균이 1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9 KBO리그 KT와 삼성의 경기 5회말 1사 삼성 정인욱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이날 경기를 앞두고 박경수는 “수비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하면 팀에 큰 민폐”라고 말했다. 심우준과 황재균이 함께 훈련 중이었는데 최근 누가 본헤드 플레이를 했는지 등을 돌아보며 실수없는 경기를 다짐했다. 가령 평범한 파울 타구를 그물망이나 펜스 등을 지나치게 의식해 포구하지 못한다거나, 타구를 잘 처리하고도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엉뚱한 곳에 던지는 등의 플레이를 선수들끼리 ‘본헤드’로 정의한 모양이다.

박경수가 황재균에게 “광주에서 파울 플라이 하나 놓쳐서 질 뻔 했다”며 농담을 건넸다. 황재균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자 타자들의 타격훈련을 지켜보던 KT 이강철 감독까지 가세해 “(박)경수 말이 맞다. 그 플라이 하나 놓치는 바람에 투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더 던져야 했는지 아느냐”며 핀잔을 줬다. 박경수가 “감독님 말씀이 맞다. 네가 그 타구를 잡았으면 불펜투수가 1이닝을 더 던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억울한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지만 이내 인정하는 자세를 취한 황재균은 “앞으로 경기 때 보자”며 으름장을 놓았다.

[포토]이강철 감독-황재균, 승리의 하이파이브
KT 이강철 감독(오른쪽)이 1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9 KBO리그 KT와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에 승리한 뒤 황재균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황재균이 송성문의 타구를 놓치는 순간, 이들의 경기 전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마운드에 서 있던 주권이 안타나 볼넷을 내주고, 그 흐름으로 위기를 맞았더라면 황재균이 꼼짝없이 ‘본헤드 플레이를 한 원흉’이 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황재균 입장에서는 주권이 단 1구만 더 던지고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으니 동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위기에서 탈출한 셈이다.

웃음꽃 넘치는 장면이지만 곱씹어보면 치열한 5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KT 선수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체력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는 시기인데다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희망을 키우는 터라 집중력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수비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베테랑들이 솔선수범해 ‘평범한 타구일수록 정확히 처리하자’며 의기투합했으니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5위싸움의 향방은 시즌이 끝나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진심으로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KT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예년과 확실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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